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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렌, 유별난 악기에서 안전의 파수꾼으로!

긴급차량이라는 개념의 구급차가 처음 등장한 것은 1797년 나폴레옹이 지휘한 프랑스 육군의 의료 책임자였던 도미니크 장 라레(Dominique-Jean Larrey)로 부터였다. 당시 병사들은 파상풍과 같이 제때 치료를 받으면 충분히 살 수 있는 상황에서도 마땅한 응급의료체계가 갖춰지지 않아 전투가 끝나고서야 후송과 치료를 받을 수 있었기에 수많은 젊은이가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하고 허망하게 목숨을 잃어야 했다.

도미니크 장 라레의 초상화 (안네 루이 지로데-트리오슨 작, 파리 루브르 박물관) ⓒwikimedia

이를 안타깝게 지켜보던 라레는 포병장교인 나폴레옹이 신설한 기마포대가 빠른 기동력을 이용해 신출귀몰하게 전장을 누비는 모습을 보고 눈이 번뜩했다. 그러곤 포병의 마차를 개조해 의약품과 음식물을 실은 의료용 마차를 만들어 부상자가 있는 곳에 빠르게 달려가 응급의료를 시행했다. 이후 라레는 응급환자를 직접 수송하는 방식을 시행했는데 그 활약상이 마치 당시 유럽사람들이 나폴레옹의 기마포대를 일컬었던 ‘나르는 포대’와 비슷하다고 해서 ‘나르는 야전병원(Flying Ambulance)’이라고 불렸다. 라레는 이 구급마차를 통해 부상병을 신속하게 치료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수술한 부상자 중 90%가 완치를 할 수 있었다고 한다.

라레의 쌍두 구급마차. 최대 6마리의 말로 8명의 응급환자를 이송했다. ⓒwikimedia

하지만 아쉽게도 당시엔 구급마차가 자욱한 포연 속을 누비고 다니면서도 마땅히 그 응급성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위험에 쉽게 노출되기도 하고 운행에 어려운 점이 적지 않았다. 오늘날엔 긴급차량인 구급차, 소방차, 경찰 및 군용 차량 등이 그 긴급성을 알리는 수단으로 사이렌(Siren)과 점멸등을 사용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사이렌의 시초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라레가 구급마차를 처음 운용했던 시기와 비슷한 1799년 영국의 철학자이자 물리학자였던 존 로빈슨(John Robinson)이 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당시 로빈슨은 이를 독특한 악기 정도로 여겼는데 그도 그럴 것이 로빈슨이 만든 사이렌은 오르간 파이프를 활용한 것이었다.

샤를 카냐르 드라 투르 남작의 기계식 사이렌의 모습 ⓒwikimedia

이후 기계식 사이렌의 효시가 된 장치는 1819년 프랑스의 엔지니어이자 물리학자인 샤를 카냐르 드라 투르(Charles Cagniard de la Tour) 남작에 의해 발명되었다. 투르 남작은 소리의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를 활발히 했었는데, 그가 발명한 사이렌의 작동 방식은 두 개의 디스크 중 하나는 고속으로 회전을 시켜 강한 제트기류를 만들고 다른 하나의 디스크는 고정시켜 기류의 흐름을 방해해 음파를 발생시키는 원리였다. 그리고 투르 남작은 이렇게 완성한 자신의 소리장치를 사이렌이라고 명명했다.

사실 이때까지도 사람들은 불이 나면 지역의 교회로 올라가 종을 쳐서 화재를 알렸다. 소방대원이라고 해도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1886년 프랑스의 전기 기술자 구스타브 트루베(Gustave Trouvé)가 전기로 구동되는 소음이 적은 사이렌을 개발한 후 사이렌이 화재경보용으로 사용되기 시작했고 1900년부터 1905년까지 미국의 두 사이렌 제조업체인 데콧 사이렌과 스털링 사이렌이 본격적으로 화재용 사이렌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그 후 많은 지역의 소방서에서 사이렌이 사용되었지만, 사이렌 소리가 상징하는 긴급성을 각인시킨 것은 처참했던 세계 1·2차 세계대전의 공포 속에 울려 퍼졌던 공습경보 사이렌과 민방위 사이렌이었다. 특히 독일의 폭격기 Ju87 슈투카는 급하강하며 ‘제리코의 나팔’이라는 풍압식 사이렌 장치로 굉음을 퍼트렸는데 이는 연합군에게 악몽과 같은 공포심을 주었다고 한다.

이후 사이렌은 실린더형, 전기모터형 등의 발전을 거듭해 오늘날 널리 쓰이는 전자식 사이렌으로 발전했다. 기계식 사이렌 소리를 흉내 낸 최초의 전자 사이렌은 1965년 모토로라 직원 로널드 H에 의해 발명되었다. 전자 사이렌은 wail, yelp, pierce/priority/phaser, hi-lo, scan, airhorn, manual 등의 소리를 단일 또는 합성으로 낼 수 있다.

충남 보령소방서 청소면 의용소방대가 보존하고 있는 확인 가능한 가장 오래된 사이렌 ⓒ소방청

조선시대 우리 선조들은 종루에 올라 화재를 감시했고 위급상황에선 큰 종을 쳐서 이를 알리고 소방대를 소집했었다. 이러한 타종방식은 일제강점기 초기까지 이어지다가 1924년 3월 남대문 소방서 망루에 소방사이렌이 처음 설치되면서 전국에 보급되기 시작했다. 현재 우리나라에 존재하고 있는 소방사이렌 중 제조년도가 확인되는 가장 오래된 것은 충남 보령소방서 청소면 의용소방대가 보존하고 있는 1925년 6월 14일 제조된 일본전기철공주식회사(日本電機鐵工株式會社, 1918년 설립) 제품이다. 이 사이렌은 전기모터로 구동되는 방식으로 우리나라에 설치된 기계식 경보장치의 효시라고 볼 수 있다.

긴급차량 중에 경찰차, 소방차, 구급차는 각기 다른 주파수와 주기로 작동하여 사이렌의 소리가 다르다. 보통 경찰차는 yelp, 구급차는 hi-lo, 소방차는 wail을 사용하지만, 전자 사이렌이 장착된 긴급차량은 사실 이 중 아무 소리나 모두 낼 수 있다. 경찰차는 300~750Hz 음파를 상황에 따라 몇 가지의 소리를 내는데 교통법규를 단속할 땐 짧게 한번 끊어서, 주위를 환기시킬 때에는 짧고 날카로운 소리를 반복적으로 낸다. 소방차는 ‘레’에서 높은 ‘솔’의 울부짖는 듯한 소리를 내는데 300~750Hz 음파를 약 5초간 길게 반복한다. 이에 반해 구급차 사이렌은 610~690Hz의 음파를 높은 ‘레’에서 높은 ‘파’ 사이로 1초간 반복적으로 내는데, 흔히 ‘삐뽀 삐뽀’와 같은 의성어로 표현된다. 현행법상 긴급 자동차의 사이렌 크기는 전방 20m 떨어진 위치에서 90데시벨 이상 120데시벨 이하여야 한다고 되어있지만, 종류에 대한 기준은 없다.

끝으로 다음 영상을 통해 다양한 사이렌 소리를 확인해보자.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고 있을 바로 그 소리임을 명심하며...

글. 최호철(소방안전플러스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