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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사냥에 나서는 탄자니아 세렝기티 국립공원의 암사자

더 나은 수면, 더 나은 삶, 더 나은 세계

아프리카의 광활한 사바나 평원, 암사자 한 무리가 물소를 사냥하고 있다. 한 마리의 암사자가 물소의 정면에서 시선을 끌면 몇몇 다른 암사자들이 날카로운 뿔을 피해 물소의 뒤를 덮쳐 바닥으로 주저앉힌다. 장기간의 실랑이와 출혈로 인해 지친 물소가 바닥으로 쓰러질라치면 대장 암사자가 득달같이 달려와 물소의 거친 숨을 끊는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다큐멘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자의 사냥 장면이다. 하지만 따져보면 이는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사자는 보통 열에 아홉의 경우 낮에 종일 퍼질러 자다가 저녁이 어스름하게 저야 사냥에 나서는 야행성 동물이기 때문이다. 생명유지에 있어 열관리가 필수적인 포유류들에게 뜨거운 한낮에 극한의 신체활동이 요구되는 사냥은 생존에 불리한 행위이다. 때문에, 열을 방출하기에 비효율적인 큰 동물들과 육식동물들은 대부분 야행성이며 중소형 초식동물들은 대부분 포식자를 피해 주행성을 띤다.

지금으로부터 약 2억년 전에 출현했던 우리 포유류의 조상들은 무시무시한 거대 육식 공룡들을 피해 1억년 이상을 철저한 야행성 전략으로 생존해 남았다. 이에 모든 포유류는 지금까지도 야행성의 습성들이 잠재되어 있는데, 유난히 긴 수염으로 주위의 사물을 탐지하고 망막에 있는 간상체를 발달시켜 명암을 구분할 수 있게 진화한 것이 그 예이다. 실제 현재까지도 포유류의 80%는 야행의 습성을 가지고 있다.

인간의 방해 활동으로 인해 포유동물들의 야행성 활동 비율은 1.3배 증가했다.

하지만 어둠에 몸을 숨기고 생존에 급급했던 포유류에게 대반전이 일어난다. 6600만년 전, 공룡들이 갑자기 멸종의 낭떠러지로 자취를 감추자 포유류들은 낮으로 진출하며 폭발적으로 분화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어둠 속에서 생존에 유리했던 후각과 청각 대신 시각 능력을 집중적으로 향상시켜 색을 식별하기 시작했고 오늘날 고도의 시각 능력을 지닌 인류에까지 진화하게 된다. 야행성에서 주행성으로, 그리고 오늘날 포식자와 인간들을 피해 다시 야행성으로 변화무쌍하게 이어지는 삶. 이처럼 대자연에서 살아가는 생명들에 있어 낮에 자고 밤에 자는 문제는 옳고 그름의 절대적인 가치가 아니라 진화와 적응의 문제인 것이다.

아침형 인간, 저녁형 인간? 아직도?

저녁형 인간도 어두운 환경에서 잠을 잔다.

이제는 좀 진부한 느낌이 들지만, 한때 아침형 인간과 저녁형 인간에 관한 이야기가 한참 뜨거웠던 적이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자면 인간은 주행성 동물이다. 약 4400만년 전 영장류는 포유류 중에서도 제일 먼저 주행성으로 탈바꿈했다. 굳이 이런 과학적 근거를 들지 않더라도 사람들은 침실을 어둡게 해야 잠을 잘 수 있다. 낮에 자는 저녁형 인간일지라도 눈이 부시게 환해야 잠을 잘 잘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는 ‘암흑의 호르몬’ 멜라토닌(Melatonin)이 우리 몸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한낮의 하늘은 빛의 산란으로 인해 푸른빛을 띠는데 멜라토닌은 푸른 파장의 빛이 발산될 때에는 분비를 억제하다가 황혼이 찾아오면 우리 몸에 관여하기 시작한다. 멜라토닌이 우리 몸에 영향력을 증가시키면 졸음이 오게 되고 혈압과 혈당, 그리고 체온을 낮아지면서 이내 잠이 들게 된다. 잠을 지배하는 생체시계의 비밀이 바로 이 멜라토닌에 있다.

스마트폰과 같은 디바이스에서 나오는 다량의 청색광(blue daylight spectrum)은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해 수면을 방해한다

사람들이 아침형 인간, 혹은 저녁형 인간이 되거나 아니면 수면장애를 겪는 이유도 이 멜라토닌의 분비가 정상적으로 발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청소년기의 일정 기간 동안은 멜라토닌 분비가 부족한 시기가 있는데 이때 만약 늦은 시간까지 두뇌의 각성 주기가 이어져 수면 리듬에 교란이 발생하면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이러한 증상을 지연성 수면 위상증후군(Delayed Sleep Phase syndrome)이라고 하는데, 흔히 저녁형 인간이라고 일컫는 현상이 이와 비슷하다. 이 경우는 수면제가 도움이 되지 않기에 낮 동안 빛을 충분히 쐬어 저녁 이후 멜라토닌 분비를 자극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와 반대로 아주 일찍 일어나서 일찍 잠드는 전진성 수면위상 증후군(Advanced Sleep Phase syndrome)은 흔히 노인들이 나이가 들면 수면 시간이 줄어들어 발생하는 것으로, 대부분의 아침형 인간은 이에 해당하지 않기에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대체 불가능한 잠의 복원능력

우리가 잠이 들면 글림프 시스템(Glymphatic System)이라는 것이 작동된다. 이는 낮 동안 활동으로 인해 축적된 뇌의 노폐물과 단백질 찌꺼기들을 청소하는 과정이다. 2012년 이를 처음 발견한 코펜하겐대학 메디컬센터 마이켄 네데르가르드(Maiken Nedergaard) 교수는 수면 부족으로 인해 글림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뇌졸중, 알츠하이머의 발병률이 크게 상승하며 뇌 신경세포, 뉴런이 회복 불가능하게 훼손된다. 이는 정신건강에도 깊은 연관이 있는데, ‘임상 정신의학 저널((Journal of Clinical Psychiatry)에 따르면 지난 30년간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우울증 환자의 50%는 수면 부족을 호소했고 조울증 환자의 38%가 수면 부족이라고 한다.

과부하가 심한 현대인의 뇌를 회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잠을 자는 것이다

잠자는 동안에는 신경세포(neuron)의 핵 안에 있는 염색체 활동성이 증가해 깨어있는 동안 축적된 DNA의 손상을 수리하는 기능도 발휘한다. 이에 수면이 부족하게 되면 유전자 발현에서도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건강한 성인을 대상으로 일주일 동안 매일 6시간만 자도록 통제해 실험한 결과 이들의 인체 중요 유전자 700여 개 중 약 면역계와 연관된 유전자들은 발현량이 줄어들었고 종양, 성장, 염증, 스트레스와 관련된 유전자는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국내 의료진이 1만6천여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수면 부족이 식욕을 억제하는 호르몬인 ‘렙틴’과 식욕을 높이는 호르몬 ‘그렐린’ 분비량에 악영향을 끼쳐 복부비만의 위험도를 32% 증가시키고 시력장애의 위험을 3.2배 높인다고 한다.

수면은 면역체계에도 크게 작용한다. 수면이 부족하게 되면 우리 몸에서 면역을 담당하는 NK세포와 T세포의 수와 기능을 감소시킨다. 이는 암 발생률에도 관여를 하는데, 미국 캘리포니아대 인간수면과학연구소 매튜 워커(Matthew Walker) 소장에 따르면 하루 4~5시간의 잠을 잘 경우 감염된 세포나 암세포를 파괴하는 킬러세포의 활동이 30% 저하한다고 밝혔다. 이에, 2007년 세계보건기구(WHO)는 야근을 2급 발암물질로 규정한 바도 있다. 매튜 워커 소장은 현대 산업화 사회가 잠을 덜 자는 풍토를 만들고 있고, 이러한 심각한 수면 부족 현상은 대재앙에 가깝다고 경고했다. 아울러 지난 75년간 수면 부족 인구가 8%에서 6배 증가한 48%에 이른다고 한다.

한국 청소년의 행복지수와 수면 시간은 OECD 국가 중 최하위다.

2017년 통계청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의 평균 수면 시간은 7시간 49분으로 OECD평균인 8시간 22분보다 33분 적어 조사 대상국인 18개 국가 중 최하위를 차지했다. 세계수면학회는 사람들이 생각하는 수면 시간이 실제보다 평균 약 50분 적다고 하니 한국인의 수면 시간은 평균 7시간이 채 안될 정도다. 특히 신체 성장과 뇌 발달을 위해 수면 시간이 더 충분히 주어져야 하는 청소년들은 7시간 18분으로 OECD 평균보다 1시간이 적었다. 수많은 연구와 논문에서 수면을 충분히 취한 학생이 그렇지 못한 학생보다 성적이 더 우수하다고 증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청소년이 잠을 잘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일까.

최근 우리 한국은 급격한 경제발전을 이루며 세계 10대 경제 대국으로 도약했다. 하지만 여전히 치열한 경쟁 속에 높은 노동시간과 낮은 수면 시간에 시달리고 있다. 언제나 고개를 숙이게 하는 우리 사회의 그림자인 높은 자살률과 낮은 행복지수 또한 도태되면 생존할 수 없다는 각박한 사회적 조건에 내몰려 수면 부족과 함께 우리를 몸과 마음, 그리고 미래의 재능과 능력까지 갉아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

더 나은 수면, 더 나은 삶, 더 나은 세계

매년 3월의 둘째 주 금요일은 ‘세계 수면의 날’이다. 세계수면학회(WASM, World Association of Sleep Medicine)가 2007년 제정해 매년 이어져 오고 있는데, 특히 올해는 코로나19 팬데믹에 의해 면역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에서 세계수면학회가 면역력 증진을 위한 5가지 수면지침을 발표했다. 당장 오늘 밤부터 건강한 수면을 위한 5가지 습관을 실천해 보자. 더 나은 내일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1. 1. 하루에 7시간 이상 잠을 자라.

    잠을 자는 것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몸을 회복시키는 최적의 과정이다. 미국수면재단에 따르면 26~64세 성인은 7~9시간을 권장하며, 6~10시간이면 적당하고, 6시간 이하 또는 10시간 이상 잠을 자는 것은 면역 기능에 치명적이다.

  2. 2.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일어나라.

    흔히 불규칙한 수면 시간으로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은 같은 시간에 잠을 자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이는 효과적이지 않다. 보통 현대인들은 주중에 부족했던 잠을 주말에 몰아서 자는 경향이 있는데, 이 과정에서 수면 리듬이 깨지게 된다. 규칙적인 수면을 통해 활기찬 생활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같은 시간에 자는 것이 아니라 같은 시간에 일어나야 한다. 잠이 부족하더라도 이를 지키다 보면 내 몸의 수면 사이클이 맞춰지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3. 3. 전자기기를 모조리 꺼라.

    TV와 스마트폰 등에서 나오는 청색광은 멜라토닌 분비를 억제해 수면을 어렵게 한다. 음악이나 방송에서 나오는 불규칙한 조명과 소리 등도 수면을 방해하고, 수면의 질을 떨어뜨린다. 이러한 생활이 반복된다면 수면에 대한 신체시계가 교란되어 결국엔 수면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수면의 질은 면역 기능과 직결한다는 것을 잊어선 안 된다.

  4. 4. 잠자리에 누워서는 생각과 감정을 내려놔라.

    잠자리에 누워 오지도 않은 내일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적잖다. 부질없음은 물론이고 수면에도 방해가 된다. 미국의 육상감독 로이드 버드 윈터는 출렁이는 배와 언제 비상사태가 발생할지 모르는 환경에서 미국 해군들이 수면장애를 겪자 2분 안에 잠이 드는 수면법을 개발했는데 요점은 이러하다. 천천히 얼굴 근육을 이환시킨다. 양쪽 어깨와 팔을 이완시킨다. 하체를 이완시킨다. 캄캄한 밤, 잔잔한 호수 위에 떠 있는 카누에 누워있거나 나무 사이에 설치한 해먹에 누워있다고 상상한다. 그리고 끝으로,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다. 이 수면법의 핵심은 신체의 긴장을 푸는 한편 더 이상 뇌에게 일거리를 주지 않는 것이다. 즉, 잠자리에 들면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5. 5. 적절한 습도와 온도를 유지하라.

    좋은 수면을 결정짓는 요소는 멜라토닌 분비량, 활동 시간의 일조량, 수면 당시의 온도와 습도이다. 가장 바람직한 것은 몸 온도를 적당히 높여 놓은 상태에서 서서히 온도를 낮춰 조금 서늘하게 잠자리에 드는 것이다. 그러면 깊은 잠을 자면서 온도가 적정하게 맞춰지게 된다. 이를 위해선 베개와 매트리스의 온도가 높으면 안 된다. 쾌적함을 주는 습도는 온도에 따라 달라지는데 15℃에서는 60% 정도, 18~20℃에서는 50%, 21~23℃에서는 40%가 적당하다.

글. 최호철(소방안전플러스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