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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인리히는 이렇게 말했다.1:29:300 법칙과 도미노 이론

1:29:300 법칙

1931년 미국, 보험회사 트래블러스 컴퍼니의 엔지니어링 및 손실통제 부서에서 근무하던 45세의 허버트 윌리엄 하인리히(Herbert William Heinrich)는 7만5,000건의 사고를 정밀 분석한 결과 하나의 통계적인 법칙을 발견한다. 그것은 1명의 심각한 인명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29번의 경상자가 발생했고, 같은 원인으로 다칠 뻔한 잠재적인 부상자가 300명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를 통해 하인리히는 책 ‘산업재해 예방 : 과학적 접근’을 통해 ‘1:29:300’이라는 하인리히 법칙을 발표하게 된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이 빙판에 미끄러져 크게 다쳤다면 그 이전에 같은 빙판에서 29명의 사람이 넘어져 가벼운 부상을 입었고, 300명의 사람이 넘어질 뻔한 일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는 수많은 데이터를 통해 얻어낸 통계적 수치이기에 크게 다치게 되는 사람이 꼭 나중에 발생한다고는 볼 수 없다. 하지만 만약 처음에 넘어질 뻔했던 사람이나 그것을 지켜본 사람이 이를 잠재적인 위험으로 인식하고 빙판을 깨서 제거하거나 안내표시를 해두는 등의 조치를 했다면 1명의 큰 부상자는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커지게 된다.

하인리히의 1:29:300 삼각형과 이후 제시된 버드의 1:10:30:600 삼각형

이처럼 하인리히의 법칙은 사고나 재난이 한순간에 들이닥치는 것이 아니라 그 꼬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채 슬금슬금 다가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수십 번의 예비적 사고와 수백 번의 징후나 전조가 반복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무시하고 방치할 경우 걷잡을 수 없이 치명적인 대형사고나 재난으로 이어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실제 20세기 초기 산업현장에서 사고가 발생하면 대부분의 감독관들은 노동자의 부주의가 근본 원인이라고 보고서를 작성했다. 하지만 하인리히에 의해 모든 사고의 95%가 사전에 노출된 위험요소를 제대로 대처하지 않은 결과임이 밝혀졌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로 보는 하인리히 법칙

붕괴 전 삼풍백화점 전경 ⓒWikipedia

원인 1995년에 발생했던 서울의 상품백화점 붕괴사고는 하인리히의 경고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초기 삼풍백화점 건물은 문제가 없었지만, 매장공간을 넓히기 위해 기둥 역할을 하던 상가건물의 벽을 허물면서 문제가 시작된다. 하중을 받쳐주던 한 축인 벽이 사라지면서 기둥으로만 건물을 떠받쳐야 했는데 그 기둥마저 부실공사로 인해 철근이 절반 가까이 빠지게 된다. 또한, 본래 4층이었던 건물을 무리하게 5층으로 확장공사를 진행하고 지하에 설치하기로 한 냉각탑이 지하공간을 확보한다는 이유로 옥상에 설치되면서 약해진 기둥이 견딜 수 없는 하중이 가해졌다. 더욱이 75톤가량의 냉각탑이 주기적으로 진동하며 건물 전체에 데미지를 주고 있었다.

300 1993년 8월, 인근 주민들의 소음민원으로 옥상에 있던 냉각탑을 옮겨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다. 이같은 경우 원래는 크레인으로 들어서 옮겨야만 건물에 무리가 없는데 삼풍백화점은 비용이 많이 든다는 이유로 옥상 바닥을 긁으면서 냉각탑을 밀어서 옮기는 최악의 실수를 저지른다. 이 과정에서 먼저 옥상 바닥이 깨지면서 건물 전체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는데, 이는 사전에 발생한 기둥축소와 부실공사, 무리한 무단 증축으로 인해 약해진 건물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되었다. 이후 건물 전체에 미세한 진동이 울리거나 이유 없이 물이 새는 등의 징조가 보였고 차차 2층을 타고 1층 벽까지 균열이 내려오기 시작했지만 이때까지 누구도 이것을 문제 삼지 않았다.

29 1994년부터 1995년 사고 직전까지 건물의 균열은 점점 늘어났고, 건물의 뼈대가 서서히 구부러지더니 백화점 전체가 조금씩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몇몇 고객들이 건물에 떨림이 있다고 백화점 측에 신고했지만 책임자들은 신고를 무마하는 데에만 급급했다. 1995년 4월, 5층 식당가의 천장에서 큰 균열이 생기더니 5월이 되자 천장에서 모래가 떨어지고 벽에서 물이 새어 나왔다. 그러자 적잖은 식당의 주인들이 백화점 측에 대책을 요구했고 내부직원마저 사태의 심각성을 보고했다. 더욱이 건물의 상태를 진단한 결과 붕괴 위험이 있다는 전문가의 견해가 나왔음에도 백화점 측은 별다른 대책을 취하지 않았다.

1 1995년 6월 29일, 삼풍백화점의 경영진들은 무너져 내리는 건물의 심각성을 그제야 파악하고 긴급대책회의를 소집했다. 하지만 그날 오후 5시 40분 삼풍백화점은 502명의 생명을 앗아가며 붕괴됐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당시 모습 ⓒWikimedia

하인리히의 도미노 이론

하인리히는 이러한 재해의 발생이 그 원인에서부터 시작하여 5단계의 연쇄반응을 통해 발생한다는 도미노 이론(Domino's Theory)을 제시하기도 했다. 그가 말한 5단계는 유전적 요인과 사회적 환경(Ancestry and Social Environment), 개인적 결함(Personal Faults), 불안전한 행동과 상태(Unsafe Act and Condition), 사고(Accident), 상해(Injury)로 이어진다.

하인리히는 불안전한 행동을 제어해 사고를 막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andrew.mcgiffert.id.au

하인리히는 이 5단계의 도미노 현상 중 3번째인 ‘불안전한 행동과 상태’를 제거함으로써 상해로 치닫는 연쇄반응을 끊는 것이 안전관리의 주안점이라고 전하고 있다. 마치 쓰러져가는 도미노의 중간을 막아내면 잇따라 쓰러지던 골패가 멈추듯이 말이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불안전한 행동과 상태는 사고 발생의 주요한 요인이며 재해를 수반하는 사고의 대부분은 이를 방지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여기서 불안전한 행동이란 안전조치를 불이행하거나 위험한 장소로 접근하는 등 인간의 불완전한 행동으로 인해 직접적으로 사고를 일으키는 원인을 말하며, 불안전한 상태란 주위 환경의 위험요소나 작업방법의 결함 등과 같이 물리적인 위험요소의 존재를 일컫는다.

더 나아가 하인리히는 불안전한 행동과 상태 중에서도 불안전한 행동, 즉 인간에 의한 사고 발생이 88%에 이른다고 보았다. 이에 안전수칙을 철저히 따르고 안전장치와 보호구를 착실히 착용하며 사소한 일이라도 안전하지 못한 상태를 방치하지 않는 것만으로 개인과 사회의 고통으로 이어질 대형사고나 재해의 상당수를 사전에 막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는 기회비용적인 측면에서 보더라도 훨씬 이득인 행동이다.

이렇게 하인리히의 이론을 쫒아가다 보니 우리 선조들의 옛말 두 가지가 떠오른다. 그것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와 ‘모든 것은 사람 하기 나름이다’라는 말이다. 하인리히가 수많은 데이터를 통해 안전에 대한 원리를 이끌어냈다면 우리 선조들은 경험을 통해 안전에 대한 통찰을 유추해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과거의 실수를 통해 큰 틀에서 좀 더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인재에 의한 대형사고에 종지부를 찍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과거 우리 선조들의 해안이 그러했고 하인리히의 집요한 분석이 그러했듯이 우리 사회에 큰 상처를 남기는 것은 언제나 사람으로 인한 재해임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글. 최호철(소방안전플러스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