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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media

긴급차량 골든타임은, 어떻게 살려야 하나

- 구급차를 가로막은 택시기사 사건에 붙여 -

2020년 6월 8일 오후 3시 15분경, 서울 강동구의 한 도로에서 사설 구급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길을 서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녹록지 않은 서울 시내의 2차선을 빠져나가느라 구급차는 그만 택시와 접촉사고가 나고 말았다. 상식으론 연락처를 주고받고 구급차를 빨리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30세의 초보 택시기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택시기사는 ‘죽으면 내가 책임진다’며 다급한 구급차를 붙잡아놓고 사고처리를 요구했다. 환자의 보호자가 항변을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택시기사는 환자가 응급상황이 아니라는 자기확신에 차 있었고 응급구조사가 없는 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이렇게 말다툼이 벌어진 사이 10여분의 골든타임은 사라져버렸고 79세의 폐암 4기 환자는 병원으로 옮겨진 뒤 5시간 만에 사망하고 말았다.

구급차를 가로막고 사고현장의 사진을 찍는 택시기사 ⓒYouTube

이러한 택시기사의 비상식적인 행동은 세간에 큰 화제가 되며 국민들의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고, 그의 처벌을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7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동참했다. 하지만 이 사건이 단지 몰지각한 택시기사를 강력하게 처벌하는 것만으로 해결되진 않을 것이다.

골든타임(영어로 Golden Hour)이란 목숨을 살릴 수 있는 ‘금쪽 같이 귀중한 시간’이라는 뜻으로 사고 발생 후 응급환자에게 치료나 수술이 이루어져야하는 최소한의 시간을 의미한다. 일률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지만 심장마비의 경우엔 4~6분, 중증 외상엔 1시간 이내에 병원에 도착해야 생존율이 높아진다고 본다.

그렇기에 신고를 접수받고 현장으로 달려가는 빈 구급차일지라도 사이렌을 키고 현장으로 달려가야 할 때가 있는 것이다. 참고로, 구급차와 같은 긴급차량인 소방차의 경우는 5분 이내에 현장에 도착하여 대형화재로 확산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최근 깡통 구급차니, 택시 구급차니 하면서 구급차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구급차가 온전히 응급환자를 이송하지 않는다는 삐딱한 시선은 앞서 언급한 몇몇 사건들을 빌미로 모든 택시 기사들이 이기적이고 분별력이 없다고 치부하는 것과 같은 일반화의 오류일 뿐이다. 사이렌을 울리며 갈 길을 재촉하는 구급차 안에 진짜 응급환자가 있을지에 대해 의심하며 확률게임을 하기에는 생명의 가치는 너무 크다.

①2014년 이전 119구급차 ②디자인이 개선된 현재의 119구급차 ③붉은색으로 ‘응급출동’이라는 표시가 있는 특수구급차 ④붉은색 또는 녹색으로 ‘환자이송’ 또는 ‘환자후송’이라는 표시가 있는 일반구급차. 일반구급차는 ‘응급출동’이라는 표시가 있으면 안 되며 대부분 녹색줄이다.

우리 법 ‘구급차의 기준 및 응급환자이송업의 시설 등 기준에 관한 규칙’에는 구급차를 크게 중한 응급환자의 이송에 적합하도록 제작된 특수구급차와 위급의 정도가 중하지 아니한 응급환자의 이송에 주로 사용되는 일반구급차로 나누고 있다. 119(소방)구급차는 모두 특수구급차이며 병원과 민간에서도 특수구급차를 운용하고 있기에 이를 확인한다면 길을 양보해 생명을 살릴 기회를 주는 것이 합당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일반구급차에겐 길을 양보해주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아니다. 구급차라는 것이 매우 돌발적인 경우에서 이용되는 이동수단이기에 운행 중 환자의 상태가 어떻게 변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특히 병원에서 병원으로, 지방에서 수도권으로 장거리 이동을 해야 하는 사설구급차의 경우에는 환자의 상태가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기에 섣부른 판단으로 생명의 가치를 거스르는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현실적인 요금과 강력한 처벌, 미국

응급환자 이송률 100%를 자랑하는 뉴욕소방국 소속의 구급차.a

뉴욕 소방국(FDNY)의 구급차는 극심한 뉴욕의 교통체증 속에서도 응급환자 이송률 100%를 자랑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엄격한 처벌과 현실적인 이용료가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우 사이렌을 켠 구급차에 길을 양보하지 않으면 400달러(약 47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오리건주의 경우는 긴급차량이 완전히 지나갈 때까지 멈춘 채로 있지 않으면 벌금 720달러(약 84만원)가 부과된다. 더해, 응급환자가 아님에도 허위나 장난으로 구급차를 부를 경우 1년 이상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최대 2만 5,000달러(약 3,0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진다. 이런 강력한 처벌과 함께 구급차에게 길을 양보하지 않으면 주위의 다른 운전자에게 쌍욕을 먹게 된다는 것도 미국 운전자들이 기피하는 대상이다.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것은 벌금만이 아니다. 뉴욕주의 구급차 이용료는 일반구급차 775달러(약 90만원), 긴급구조차의 경우 긴급 상황에 따라 레벨 1은 1,310달러(약 152만원), 레벨 2는 1,420달러(약 165만원)로 책정되어 있다. 그리고 마일(1.6키로미터)당 15달러(약 1만 8,000원)가 더해지고 산소공급 서비스를 이용하면 66달러(약 7만 7,000원)가 추가된다. 정말 엄두도 나지 않는 액수다. 세금으로 운영되어 응급환자라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우리의 119구급차는 그렇다 치고, 나름 비싸다고 여겨졌던 우리의 사설구급차보다 10배 가까이 비싸다. 상황이 매우 급박한 응급환자가 아니라면 구급차를 쉽사리 이용할 수 없는 가격대다. 이에 미국에서 구급차는 꼭 타야 할 사람만 타게 되고, 응급하지 않은 환자가 구급차를 이용해 발생하는 인적·물적 역량의 누수를 최소화할 수 있어 효과적인 응급환자 이송이 가능해진다.

이밖에도 미국은 911시스템 안에 모든 구급차를 두어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의료응급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뉴욕시의 경우도 70%의 FDNY 소속 구급차를 포함해 30%의 병원 사설구급차까지 FDNY가 직접 제어한다. 강력한 처벌과 부담스러운 요금만이 구급차의 골든타임을 지키는 유일한 해답은 아니라는 것이다. 더욱이 국가운영의 효율성보다 국민의 생명기본권을 우선시하는 우리나라와 같은 국가에선 국가가 운영하는 구급차를 응급환자에 한해 국민에게 무료로 제공하고 있기에 채찍만을 의지해 구급차를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는 없다.

성숙한 시민의식, 독일의 레퉁스가세(Rettungsgasse)

독일에선 흔한 모세의 기적 ⓒadac

2017년 독일 중앙정부는 구급차나 소방차와 같은 긴급차량의 출동을 방해하는 운전자에게 기존 20유로에서 200유로(약 27만원)로 벌금을 10배 인상했다. 여기에다 벌점과 함께 1달 면허정지 처벌이 추가된다. 독일의 면허 취득 과정은 매우 까다롭고 철저하기로 유명하다. 흥미로운 것은 이를 국민들이 반긴다는 것이다. 가장 먼저 이 소식을 보도했던 빌트의 온라인 설문에 따르면 약 4만 3,000명의 독자 중 64%가 요금인상에 찬성했다는 전하고 있다. 이는 처벌을 강화해 구급차의 골든타임을 보호하기 위함이지만 다른 한편으론 처벌을 강화해서라도 구급차의 골든타임을 보호해야 한다는 독일 국민의 의식을 엿볼 수 있다.

이를 잘 나타내고 있는 현상이 레퉁스가세(Rettungsgasse) 캠페인이다. 레퉁스가세는 긴급차로라는 뜻의 독일어로 긴급차량에게 길을 터주자는 구호이다. 이러한 구호가 적힌 현수막이 아우토반 곳곳에 부착되어 있다. 레퉁스가세 캠페인의 취지는 이러하다. 길이 막히면 긴급차량에게 길을 터주고 싶어도 옴짝달싹하지 못하기에 평상시에 미리 긴급차량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공간을 비워두고 운행을 하자는 것이다. 이에 1차로는 중앙 분리대 쪽으로 최대한 밀착시키고, 2차로 이상부터는 최대한 바깥쪽으로 운행해 그 사이를 비워 긴급차량이 지나갈 자리를 마련하게 된다. 배려가 이렇게 철두철미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마저 든다.

레퉁스가세 로고 중 하나 ⓒWikimedia

처벌강화 + 시스템개선 + 시민의식 = ?

구급차를 가로막은 택시기사 사건이 발생한 후 지난 9월 2일, 청와대는 국민청원 답변을 통해 긴급자동차 진로양보 의무 불이행시 범칙금을 상향하고, 긴급자동차에게 우선신호를 부여하는 시스템을 확대 구축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단기적으로 효과를 볼 수 있는 처벌을 강화하는 한편 장기적으론 교통시스템을 개선해 구급차의 운행에 최적화된 신호체계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큰 틀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앞서 본 사건사례를 봤듯이 구급차와 골든타임에 대한 전반적인 의식개선 없이는 드라마틱한 성과를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난 9월 2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는 구급차의 환자 이송을 방해하는 행위를 처벌하는 119구조·구급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처리했다. 119구조‧구급 활동 범위에 구급차를 통한 환자 이송을 추가한 것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 구급차를 가로막는 행위 등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됐다. 정말이지 오금이 저릴 정도의 강력한 처벌이다. 이를 어기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어 아무도 재산을 탕진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만약 어길 시엔 꼭 이 강력한 법이 집행되기를 또한 바란다.

지난 몇 년 사이 한국의 시민의식은 촛불혁명과 모범적인 코로나19 방역을 거치며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불미스러운 사건들을 통해 그처럼 어렵게 쌓아 올린 공든 탑이 자칫 훼손되는 것은 아닌가 안타까운 마음마저 든다. 갑론을박을 넘어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아름다운 미담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제도가 이러하든 처벌이 저러하든 무슨 장애가 될 것인가. 하지만 국가란 언제 작동할지 모르는 시민의식에 기대어 운영할 수 없는 법일 것이다. 합리적인 지원을 통한 제도화도, 철저한 감시와 처벌을 통한 법치주의도, 훌륭한 시민의식과 잘 버무려져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글. 최호철(소방안전플러스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