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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안데르탈인 남녀의 복원 조형물, 독일 메트만의 네안데르탈 박물관 ⓒWikimedia

다이어트, 호모 사피엔스의 숙명인가?

지금으로부터 2만 4,000년 전, 이베리아반도 남단 지브롤터 해안의 고람 동굴에서 한 네안데르탈인이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극심한 영양실조와 함께 고독하게 죽어갔을 그의 최후로 인해 네안데르탈인은 지구라는 대서사시에서 자취를 감춘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2000년 인간게놈지도가 완성된 이후 인류에 관한 대대적인 게놈연구가 진행되면서 현생인류의 유전자 중 네안데르탈인으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가 1~4% 가까이 된다는 것이 밝혀졌다. 네안데르탈인이 비록 멸종되었지만 그들의 유전자 중 일부가 호모 사피엔스에게 흡수되었다는 것이다.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떠나 유례없는 속도로 전 지구적인 확장을 이뤄낼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고인류와의 유전자교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예로 네안데르탈인에게서 전달받은 TLRs 유전자는 병원체를 감지해 신속한 면역반응을 일으킴으로써 유라시아의 풍토병으로부터 호모 사피엔스가 면역력을 빠르게 확보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문제는 호모 사피엔스가 물려받은 유전자가 다 좋지만은 않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생명과학은 유전자 분석을 통해 우리가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지 알려주고 있다.

그중 혹한기 유전자라고도 불리는 SLC16A11 유전자는 효과적으로 지방을 축적하게 하는 유전자다. 그렇다. 비만의 지름길로 우리를 안내하게 될 몹쓸 굴레가 바야흐로 씌워진 것이다. 그렇다면 네안데르탈인은 호모 사피엔스에게 자신들의 터전을 잠식당하는 절박한 상황에서 남겨질 같은 인류에게 저주를 내린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사실 SLC16A11 유전자는 당시만 해도 생존에 굉장히 유리한 유전형질이었다. 마지막 빙하기가 약 11만년 전에 시작되어 1만 2천년 전에 끝날 때까지 지구의 환경은 인류에게 지방을 잘 축적하는 방향으로 선택압을 가했고 상대적으로 북쪽에 서식했던 네안데르탈인은 그러한 자연환경에 잘 적응한 진화형태인 것이다.

달려야 사는 동물, 호모 사피엔스

남아프리카 나미비아 부시맨의 사냥 모습

사실 비만의 원인이 되는 유전자는 SLC16A11뿐만은 아니다. 지방을 저장하는 FTO 유전자의 변이와 함께 지속적인 식탐을 일으키는 MC4R 유전자, 스트레스를 받으면 식욕을 촉진시키는 BDNF 유전자, 야식을 부추기는 CLOCK 유전자,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렙틴수용체 유전자 등이 비만의 원인이 된다. 이들은 실제 배가 고프지 않더라도 뇌하수체의 시상하부를 자극해 가짜 배고픔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유전자들은 인류가 수렵채집만으로 생계를 유지했던 시기에선 그 위상이 공고했던 것들이다. 사냥의 성공 여부에 따라 식량 확보가 들쭉날쭉했을 고대 인류에게 잔뜩 먹을 수 있을 때 저장하고 못 먹을 때 꺼내 쓸 수 있는 에너지원인 지방을 효과적으로 축적한다는 것은 생사를 갈라놓는 우월한 능력이었고 이러한 형질은 자연선택에 의해 살아남아 대를 이어 나갔다.

농업혁명은 우리의 생활과 생산양식뿐만 아니라 우리의 몸도 바꿔 놓았다.

이처럼 신석기시대까지 수렵채집에 의존했던 인류는 생존을 위해 100만년 전부터 털을 없애고 땀샘을 발달시키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이는 상대적으로 열등한 신체조건을 탁월한 체온조절 능력을 활용해 사냥에 성공하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인류는 하루 대부분을 걷거나 뛰어야만 했고 수렵채집 시절의 호모 사피엔스 또한 한 사람의 식량을 확보하기 위해 25㎢의 땅을 누벼야만 했다. 하지만 11,500년 전 터키와 시리아 인근에서 최초의 농업이 시작되자 상황은 돌변했다. 이전보다 100분의 1 정도의 땅만으로 안정적인 먹거리를 생산할 수 있게 되었고, 그즈음 간빙기가 찾아와 지구의 온도는 섭씨 6도 이상 상승하게 되었다. 지방을 축적하는 유전형질의 이점이 무색해지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문제는 하루 종일 걷거나 뛰어다니는데 특화되고, 굶는 날을 위해 지방을 축적해두는 인류의 몸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오늘날까지도 그때와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더욱이 현대인의 삶은 우리에게 유전형질을 물려준 그들과 정반대의 삶, 그러니깐 최소한만 움직이고 최대한 먹고 싶은 만큼 먹는 삶을 살아가고 있다. 우리 몸의 진화가 변화하는 생활양식을 따라오지 못해 발생하는 몸과 생활의 패러독스, 이것이 바로 비만의 본질적인 원인이라 할 수 있다.

다이어트, 취향인가 본능인가

다이어트(Diet)는 라틴어의 ‘diaeta’와 그리스어 ‘diaita’에서 기원했는데 이는 생활양식을 뜻하는 것으로 일상의 습관을 바꾸어 건강한 삶을 영위한다는 의미다. 하지만 지금의 다이어트는 외모를 가꾸기 위해 살을 빼는 행위 또는 이를 위한 식이요법을 의미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기원전 25,000년~20,000년으로 추정되는 빌렌도르프의 비너스, 오스트리아 빈 자연사 박물관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문명에선 살이 찐 여성, 골격이 큰 남성을 아름다움의 상징으로 보았다. 살찐 여성은 풍부한 젖의 양으로 인해 다산과 양육에 유리했고 골격이 큰 남성은 노동력과 전투력이 뛰어났기에 이러한 생존과 번식의 유리함이 아름다움으로 규정됐다. 하지만 이후 아름다움의 기준은 사회적·문화적 요인으로 인해 바뀌기 시작했는데 종교적 순결을 중시했던 중세시대엔 피부가 희고 가슴과 엉덩이가 작은 여성이 아름다움의 기준이었던 반면 인간에 대한 관심이 커졌던 르네상스 시대엔 다시 풍만한 가슴과 허벅지를 가진 성숙한 여성이 미인으로 여겨졌다.

근래는 이러한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 사회적인 요인에 의해 급변하고 있다. 1·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인구감소가 발생하면 풍만한 여성을 선호했다가 베이비 붐으로 인해 인구회복이 이뤄지면 다시 날씬한 여성을 선호하는 식이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고도화된 1980년대 이후 사람들은 꾸준히 날씬한 몸매를 아름다움의 기준으로 여기고 있다. 미국 공중보건 저널은 1990년대 중반부터 비만과 소득의 관계를 발표하고 있는데 이에 따르면 비만과 소득이 반비례하며 비만과 개발도상국은 비례한다는 것이다. 이는 날씬함은 곧 부유함이고 부유함은 자본주의의 가장 강력한 생존경쟁력이기에 사람들이 이를 갈망하는 것은 본능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아름다움에 대한 갈망은 적잖은 함정이 숨어 있다. 앞서 말했듯이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절대적인 기준이 없으며 최근에는 그 변화의 주기가 더욱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인구절벽으로 치닫고 있는 지금의 선진국들에서 다시금 풍만한 여성이 아름다움의 기준이 된다고 해서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기에 날씬한 몸매를 맹목적으로 추구하며 여성들에게 다이어트를 강요하는 오늘날의 사회풍토는 심히 우려스럽다.

최근 5년간 골다공증 추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최근 2014년에서 2018년까지 5년 동안 우리나라 골다공증 환자의 비율이 14%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이것을 고령화 사회로 인한 현상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10∼20대 연령의 골다공증 환자가 같은 기간 약 10% 이상 증가했다는 것은 삶의 질이 높아지는 가운데 이를 역행하는 영양결핍 현상으로, 젊은 여성들 사이에서 이뤄지는 과도한 다이어트가 미래세대의 건강을 잠식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참고로 골다공증은 암 못지않게 위험한 질환이라고 전문가들은 경고하고 있다.

다이어트의 본질은 건강

최근 저탄고지로 알려진 LCHF 다이어트 또는 키토제닉 다이어트가 세계적인 화제가 되었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지방을 섭취하면 살이 된다고 생각하는데 실제 지방은 살이 되지 않는다. 우리 몸은 주로 탄수화물을 분해해 포도당을 만들어 에너지원으로 활용하는데 그렇게 쓰고 남은 포도당을 살로 저장해 두는 것이다. 지방은 열량이 탄수화물의 2배가 넘기에 상대적으로 탄수화물을 덜 쓰게 되고 그렇게 남게 된 탄수화물이 살이 되는 것이다. 이를 착안해 저탄고지는 지방의 섭취를 늘려 에너지원을 얻되 살이 되는 재료인 탄수화물의 섭취를 최소화하는 식이요법이다.

하지만 이러한 극단적인 식단의 다이어트에 대해 국내외 의료계 및 전문가들은 건강을 해칠 수 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실제 2018년 유럽 심장학회는 저탄수화물 고지방 다이어트가 단기적으론 체중감량, 혈당 조절, 혈압 감소 등의 효과가 있지만 장기적으론 심혈관 질환, 뇌질환, 암과 같은 질병의 원인이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이는 우리의 몸을 이해한다면 당연한 얘기다. 우리 인류는 팬더와 같이 한 가지 음식에 적응해 생존한 동물이 아니며 오랜 기간 넓은 지역에서 얻은 다양한 먹거리를 수렵채집해 섭취했고 여전히 그러한 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가 신체 내부에서 절대 합성할 수 없는 다양한 물질들을 필수 대사물질로 가지고 있음은 이러한 적응의 산물이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21세기 4차 산업혁명의 뉴노멀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 우리의 몸이 여전히 석기시대의 호모 사피엔스에 머물러 있다는 것이다. 너무도 당연하고 뻔한 얘기지만,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먹고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 이외에 호모 사피엔스가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이어트는 ‘날씬함’이 아닌 ‘건강한 삶’을 지향하는 태도에서 출발해야 한다.

글. 최호철(소방안전플러스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