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은 동물의 내부에 있는 핵심적 장기로서 동물이 살아있는 동안 혈액을 순환시켜 영양분과 산소를 몸 구석구석까지 전달하고, 반대로 필요 없어진 노폐물을 배출하는데 작용을 하는 대체 불가능한 중요한 장기이다. 펌프는 자동차와 같은 움직이는 기계에, 고정적인 건축물에, 유체를 운송해야하는 산업에서 동물의 심장과 같은 작용으로 필수적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소방분야에서도 불을 끄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적 소화약제인 물에 에너지를 가해 움직이게 하는 기능을 하는 펌프는 가장 중요한 기계라고 할 수 있다. 스프링클러, 옥내소화전 등과 같은 물을 사용하는 건축물의 소방설비의 구성요소로서, 소방시설의 사각지대로 출동하는 소방차에서 펌프는 물에 힘을 가해 움직일 수 있게 해 물을 불과 만나게 하는 작용을 한다.
현재 소방시설과 소방차에 사용하는 펌프의 형식은 원심펌프다. 원심펌프는 회전날개로 물을 회전시켜 물에 원심력을 가하고 원통형으로 생긴 펌프 케이스로 물을 한 지점으로 유도해서 동력을 물의 압력으로 전환하는 원리로 동작한다.
원심펌프는 구조가 간단해 동일한 출력의 다른 유형의 펌프보다 작게 만들 수 있고, 효율이 높으며, 경우에 따라 유량을 많게 하거나 압력을 높게 만들 수 있어서 사용목적에 따라서는 기존의 용적형 펌프와 비교할 수 없는 장점을 가진 획기적 펌프이다. 특히 원심펌프는 차량에도 설치 가능하고, 맥동이 없으며, 많은 양의 물을 공급할 수 있어서 예상치 못한 곳에 지속적으로 많은 양의 물을 사용해야하는 소방목적에 부합한다.
이번 지면에서는 원심펌프가 등장하기 전까지의 인류가 감당하기 어려운 화재와 치열하게 싸우며 발전해온 펌프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다.
기록으로서 가장 오래된 펌프는 기원전 2000년 경의 ‘샤두프’(Shadoof)라고 할 수 있다. 샤두프는 중간을 지지하는 긴 막대를 이용해 한 쪽에 무게추를 달고 한 쪽의 물을 퍼낼 수 있는 용기를 달아, 지렛대의 원리를 통해 힘을 덜 들여서 낮은 곳에 흐르는 물을 위쪽으로 퍼낼 수 있는 도구이다.
두 번째로는 나선 양수기를 들 수 있는데, 나선 양수기는 나사산 모양의 홈을 이용해 회전운동으로 물을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릴 수 있는 연속 용적형 펌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위의 초기 펌프는 생활에 범용적으로 사용하는 물을 옮기는 수단으로 이용되었고 소방목적으로도 활용되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화재진압 목적의 첫 번째 펌프의 형태는 주사기형 피스톤 펌프로서 헬레니즘 시대의 3대 발명가 중 한명인 크테시비우스(Ctesibius)가 고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사기형 펌프는 실린더 내부에서 피스톤이 행정을 할 때 움직인 체적만큼 유체를 방출하는 전형적이고 원시적인 용적형 펌프이다. 스퀴츠(squirt), 핸드-펌프(hand-pump) 등의 이름으로 불린 이 펌프는 화재진압 도구로서 전 유럽에서 근대까지 활용되었다.
두 개의 실린더를 배치해 한 개의의 막대로 양쪽의 피스톤을 교호적으로 동작하는 연속 피스톤 펌프 역시 주사기형 펌프를 발명한 크테시비우스가 처음 발명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헬레니즘 직후에는 조악한 기계제작기술 탓에 너무 비싸고 비효율적이어서 본격적으로 소방용으로 활용되지는 않았다.
생활에 필수적인 물의 중요성으로 사람들은 물을 자신의 거주지 가까이 끌어오기 위해 펌프를 보다 편리하게 발전시켰다.
보통의 피스톤 펌프는 직선 왕복운동으로 움직여야하기 때문에 펌프를 이용하기 위해 힘을 가할 때에는기계의 사용방법에 맞춰 사람이 움직여야 했는데 사람의 힘은 그 크기와 지속성에 한계가 있어서 펌프는 수력과, 축력이 제공하는 회전운동을 이용하기 위해 회전식으로 발전했다.
16세기 중반 이탈리아의 아고스티노 라멜리(Agostino Ramelli) 프랑스로 건너가 자신의 저서를 통해 회전식 펌프를 최초로 선보였다. 이 펌프는 원통형 케이스 안에 편심으로 회전하는 회전부로 구성되는데, 회전부에서 나무판(Vane)이 튀어나와 케이스안의 공간을 구획하고 회전에 따라 그 만큼의 물을 토출할 수 있는 용적형 펌프로서 ‘베인펌프’라고 불렸다. 베인펌프는 이후 회전식 용적형 펌프인 기어 펌프와 로브 펌프를 탄생하게 했다.
회전식 용적형 펌프는 소방분야 보다는 물자체를 의도하는 곳으로 운송하거나, 용광로의 풍로를 대체 하는 등 유체 자체를 이용하거나 운송하는 다양한 산업에서 활용되었다.
소방분야에서 펌프는 근세의 말 기록적 대화재인 런던 대화재를 전후로 그동안 화재진압을 주도했던 사람들의 양동이 행렬보다 우월한 화재진압 도구로서 주목받아 발전하게 되었다. 대화재 전 독일과 네덜란드 등에서 시범적으로 개발되었던 수동 소방펌프는 대화재 후 런던에서 큰 개선이 있게 되었다. 나무관을 이용한 상수도망의 보급과 소방호스의 본격적 사용이후에는 수동소방펌프의 능력이 크게 개선되어, 사람들이 불을 끄는 행동양식은 불특정다수인이 구성하는 양동이의 행렬에서 전문소방대가 운용하는 수동 소방펌프로 점점 변화해 갔다. 특히 1700년대 초 리처드 뉴샴(Richard Newsham)은 기존의 소방펌프를 불편하고 거추장 스러운 것에서 쓸만한 것으로 바꾸어 놓았다.
소방펌프는 좁은 골목길도 통과 할 수 있도록 차폭이 좁아지고 길어졌으며 차량의 앞뒤에서 사람을 배치 하는 것이 아니라 차량의 양 옆에서 펌프질을 할 수 있어서보다 많은 힘을 펌프로 모을 수 있었다. 20명의 사람이 분당 230리터의 물을 높은 압력으로 토출할 수 있었던 리차드 뉴샴의 소방펌프는 식민지 미국으로도 건너가 후일 영국과 미국의 소방차 경쟁을 할 수 있게된 기초를 제공했다.
수동소방펌프는 본격적인 소방호스의 사용과 사다리 등을 같이 운반하며 기본적인 화재전술에 맞춰 변화했다. 사람의 힘과 비교가 불가능한 증기력을 활용하게 된 이후 소방차역시 증기력 펌프를 탑재하며 크고 무거워졌다.
사람이 끌기에는 너무 무거운 증기펌프를 끌기위해 말이 사용되었고 증기의 힘으로 회전운동을 하는 증기기관의 발명과 그 활용이 적극적인 시기를 지나 소방차 역시 스스로 증기기관의 힘으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너무 무거운 증기기관, 증기력 펌프의 전성기는 내연기관의 등장으로 빠르게 저물어 갔다.
산업혁명이 어느정도 성숙한 이후 파리와 영국의 만국 박람회에서는 영국과 미국으로 대표되는 각국의 소방펌프와 소방차들이 서로 경쟁을 했다.
하지만 이 때까지 소방차에 적용되는 펌프는 모두 용적형 펌프로서 압력은 크게 만들 수 있었지만, 기본적으로 맥동이 있었고, 고장이 잦았으며, 많은 유량을 토출 할 수 없어서 화재진압에 요구되는 사양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1689년 압력솥을 발명하고 인류가 증기력을 활용하는데 지대한 영향을 미친 프랑스 과학자 드니 파팽(Dennis Papan)이 자신의 논문에 원심펌프를 소개한 이래로, 오랜 시간이 지나 19세기 초 이 원리를 활용한 원심펌프가 미국에서 최초로 상업용으로 활용된 이후로도 많은 시간이 지나 비로서 1912년 미국의 ‘Seagrave Fire Apparatus’사에 의해 원심펌프를 적용한 소방차가 최초로 등장했다.
원심펌프의 원리를 적용한 발명을 최초로 한 사람은 1475년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공학자 프란체스코 디 조르지오 마르티니 (Fransco Di Giorgio Martini)로 알려져 있다. 그는 자신의 논문에서 진흙과 같은 유체를 퍼올릴 목적으로 만든 펌프로서 호스를 말아놓은 것처럼 생긴 펌프를 소개했다.
하지만 이 펌프는 회전운동으로 물에 흐름을 만드는 것은 원심펌프와 유사하지만 원심력으로 유체에 에너지를 가한다고 볼 수 없고 연속해서 이어진 구조물의 체적으로 유체가 이동하는 용적형펌프로서 아르키메데스의 나선 양수기의 한 변형이라고 할 수 있다. 조금 더 뒷 세대인 레오나르도 다 빈치( Leonardo da Vinci) 역시 원심펌프의 개념을 스케치로 남겼다고 전해지지만, 스케치의 묘사에 의하면 회전운동력으로 인한 원심력을 물의 높이를 높이는 기구로 효율적인 펌프라고 볼 수 없었다.
유체에 원심력을 가해 압력을 가하는 진정한 의미의 원심펌프 발명자는 프랑스의 발명가 드니 파팽(Dennis Papan)이라 할 수 있다.
드니 파팽은 화약의 힘으로 발사하는 대포처럼 어떤 실린더 내부의 피스톤을 운동하는 작용을 이용해 기계적 힘을 얻고자 했던, 초기 증기기관과 내연기관의 개념을 처음으로 생각했던 네덜란드의 석학인 크리스티안 휴이겐스(Christian Huygens)의 제자로서 그 역시 초기 증기기관을 연구했으며, 용기를 증기압을 견딜 만큼 견고하게 만들어 식재료를 넣어 조리할 수 있도록 만든 압력솥을 만들기도 한 인물이다.
드니 파팽은 1689년 과학 학술지인 ‘악타 에루디토룸‘(Acta Eruditorum)에 강에서 물을 퍼올리거나 광산 내부의 공기를 강제 순환을 목적으로 고안한 원심펌프를 발표했다. 파팽의 펌프는 원통형 케이스 안에 축을 기준으로 두 개의 회전 날개로 축방향으로 공급되는 유체에 원심력을 가해 토출하는 원리로서 최초의 진정한 의미의 원심펌프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초기의 설계는 비효율적이었고, 구조가 단순하다고 고속으로 움직이며 불규칙한 축력, 수력, 풍력의 힘으로 원하는 일정한 회전속도를 구하기 힘든 점 때문에 제작이 용이하지 않았다.
다니엘 베르누이는 상트페테부르크 의학교수로 재직하던 시절 혈관을 흐르는 혈액에서 영감을 받아 일정한 조건하의 유체가 흐르면서 압력과 위치가 변할 때 속도가 변화하는 관계식을 정리했다. 그의 친구이자 당시대를 대표하는 수학자 레온하르트 오일러(Leonhard Euler)는 베를린에 거주하며 왕명에 따라 현실적인 문제들을 수학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는데 이때 물의 에너지를 일로 변환하는 기계인 터빈과 원심펌프의 설계에 필요한오일러 펌프 방정식(Euler’s pump equation)과 터빈 방정식(Euler’s turbine equation)을 정리해 과학 출간물인 ‘Scientia navalis’를 통해 발표했다.
유체에 관한 연구와 효율적인 수학적 설계는 당시로서는 구현하기 어려운 이상으로만 존재했고 원심펌프는 몇 세대를 지난 1818년 원심펌프는 미국의 메사추세츠에서 상업용 펌프로서 다시 등장했다.
1831년에는 회전날개가 직선에서 곡선으로 바뀌었고 1846년에는 펌프의 회전속도가 어느 지점을 지나면 더 이상 펌프의 회전이 빨라져도 물을 올릴 수 있는 높이가 일정하다는 원심펌프의 특성이 알려지며 다단펌프가 등장했다.
1848년 영국인 존 아폴드(John George Appold)가 수학적 설계가 아닌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실증한 결과 회전날개의 각도가 회전방향으로 기울여진 원심펌프를 만들었는데 1851년 런던 크리스탈 팰리스에서 열린 만국 박람회에서 여러 유럽의 최신 원심펌프들과 비교검증 끝에 가장 우수한 원심펌프로 평가받게 되었다.
아일랜드 출신으로 케임브리지 퀸즈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고 조선소의 작업장에서 견습생 근무를 한 이력이 있는 오스본 레이놀즈(Osborne Reynolds)는 견습생 근무를 하며 선박의 안전과 관련해 강과 해수의 흐름을 연구하며 유체는 층류와 난류 두 가지의 흐름이 있으며 이 두 흐름은 점성력과 관성력의 관계로 설명했다.
레이놀즈는 점성력과 관성력의 역학관계를 정량적인 무차원 수를 구해 유체의 흐름을 예측 할 수 있도록 했으며 이 수를 자신의 이름을 따 레이놀즈 수라고 명명했다.
레이놀즈는 아폴드의 원심펌프의 회전날개 직경을 줄이고 난류흐름으로 배출측으로 나가는 물을 유도하는 가이드를 케이스 안에 설치했다. 레이놀즈의 아이디어를 적용해 기계적 손실을 줄이고 능력을 높인 원심펌프를 터빈펌프, 그렇지 않은 원심펌프 형식을 볼류트 펌프로 구분하고 있다.
용적형 펌프와 원심 펌프 형식 중 어느 것이 더 우월하고 할 수 없는 성격으로 각각의 펌프는 설계에 따라 각각의 단점들을 극복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소방용도의 펌프에 원심펌프 형식의 사용이 절대 우위에 있는 것은 다음의 몇 가지의 이유를 들 수 있다.
20세기 들어서 화재의 규모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짐에 따라 화재진압 에는 고압의 방수보다 대유량의 방수가 필요해졌으며, 내연기관의 적극적 활용으로 원심펌프 형식이 한정된 내연기관 차량의 공간을 활용하기에 적합했으며, 가장 결정적으로 소방시설, 소방차의 구성요소에는 무엇보다 신뢰성이 요구되어 고장이 적은 원심펌프가 적합하기 때문이다.
전술했듯 현재 소방장비에 적용하는 펌프의 유형은 원심펌프가 주류로서 소화약제 이송과 같은 특수한 용도로 용적형 펌프가 일부 사용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의 소방펌프의 형식승인이나 검정기술기준 역시 원심펌프 위주로 작성되어있어 사실 소방공무원이나 소방산업에 종사하는 실무자들은 현재 사용하는 펌프인 원심펌프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고 있지만 다른 산업에 쓰이는 여러 유형의 펌프 등 전반적인 펌프의 연혁 등 배경에 대해 알고 싶어도 자료도 찾기 힘들어 잘 알 수 없는 실정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펌프의 역사를 짧게나마 살펴보았듯, 그리고 모든 발명이 그렇듯 이 세상에 전혀 존재하지 않았던, 기존의 물건들의 단점을 모두 극복한 미지의 기계가 천재적인 누군가에 의해 돌연 세상 밖에 나오는 경우는 역사적으로도 극히 드물다고 단언할 수 있다.
일례로 존 아폴드는 모피를 염색하는 일을 주업으로 하던 사람으로, 과학과 발명분야에 이론적으로 능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수많은 발명을 남겼지만 그의 발명들은 타고난 천재적 재능 보다는 보다 나은 현실을 만들기 위한 끊임없는 관심과 수없는 실패를 낳은 시행착오에서 태어난 발명들이라고 할 수 있다.
펌프를 포함한 현재의 소방장비에 현재 쓰이고 있는 여러 기계들 역시 각각의 특징을 불변의 것으로 인식하는 순간 발전은 정체된다.
똑같은 사물이라도 그 연혁 등 배경과 유사한 것과 비교와 그 작용과 기능에 대한 관심, 기능에 대한 직관적 고찰은 똑같은 사물을 매번 다르게 바라보게 만든다.
소방에 입문한지 17년차 소방공무원으로서 목격한 그 간의 소방의 변화를 돌아볼때 현재 소방시설은 완성되어 있는 것이 아닌 앞으로도 수많은 발전의 여지가 있는 미완의 분야임을 확신한다.
이전보다 조금 더 나은 소방장비가 출현하고 그러한 작은 개선들이 모여 또 조금더 화재와 재난으로부터 안전한 세상이 만들어지는 순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의 것을 그저 당연하게 바라보는 것이 아닌 또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자그마한 관심에서 시작하는 것임을 확신한다.
글. 송병준|중앙소방학교 교육훈련과 전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