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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외 소방안전 규정을 새로 쓴 보스턴
코코넛 그로브 나이트클럽 화재사건과 대연각호텔 화재사고

우리가 흔히 접하는 시설은 소방안전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 출처 : pixabay

많은 인파가 오가는 대형 건물을 보면, 입구 회전문 옆에 손쉽게 이용 가능한 출입문을 개방하고 있다. 또한, 내부엔 화재를 대비해 스프링클러 설비를 의무적으로 설치하곤 한다. 그런데 이처럼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각종 시설은 사실 소방안전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아울러 안타까운 비극으로 알려진 미국 보스턴 코코넛 그로브 나이트클럽 화재사건과 우리나라 대연각호텔 화재사고가 남긴 귀중한 교훈이기도 하다.

지역 내 최고 인기 명소…알고 보니 비상구 폐쇄하고 정원의 두 배를 수용해

조사 결과 코코넛 그로브 나이트클럽의 비상구는 모두 폐쇄 상태였다. / 출처 : Boston Global

1927년 미국 매사추세츠주 보스턴 베이브리지에 개점한 코코넛 그로브 나이트클럽은 원래 평범한 시민이 찾는 가게가 아니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주류를 판매하는데 당시는 금주법이 시행 중이었기에 영업 자체가 불법이었던 까닭이다. 자연히 점주는 물론, 고객까지 온갖 범죄와 연루해 있었다고 전한다. 이 같은 시초는 훗날 일어날 화재 사건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지만, 놀랍게도 결정적인 원인 가운데 하나로 작용한다.
한편 마침내 규제가 풀린 1933년부터 대중을 상대로 영업에 나선 클럽은 큰 확장을 거쳤다. 건물을 증축해서 바를 곳곳에 설치했으며 댄스 플로어, 라운지, 레스토랑 등을 배치하기에 이르렀다. 또, 항상 겨울이 머무는 분위기의 동부에 자리한 만큼, 기분 전환을 위해 밝고 행복한 열대를 주제로 곳곳에 코코넛 모형을 걸고 이국적인 소품을 두었다. 누구나 가보고 싶어 하는 명소로 입소문 난 이곳은 지역 내에서 단연 인기였다.
반면, 명성과 달리 실상은 어둡기 그지없었다. 범죄조직 보스였던 전 주인이 살해당하면서 그의 변호사를 맡았던 바넷 왈렌스키((Barnet Barney Welansky)가 가게를 이어받았지만, 합법은커녕 여전히 음지에서 써오던 방법대로 운영했다. 안전 규정을 무시한 채 앞서 설명한 모든 과정을 통과했으며 무전취식을 방지하는 차원에서 모든 비상구를 폐쇄했다. 게다가 최대 정원인 500명 이상이 몰렸으나 개의치 않았다. 물론 겉보기엔 문제없었다. 심지어 사건 열흘 전 소방 평가에선 안전하다는 진단을 받은 터였다.

회전문 양측에 또 다른 출입구가 생긴 서글픈 이유

처참하게 타 버린 내부 / 출처 : Boston Public Library

결국 1942년 11월 28일, 무려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사상자가 나온 비극이 발생했다. 발단은 사소했다. 여자친구와 로맨스를 즐기기 위해서 야자 조명 안에 든 전구를 돌려서 뺀 남성으로 인해 주위가 어두워졌고 다시 끼우려 했던 점원은 잘 보이지 않자 성냥을 켰다가 껐다. 그러나 어느 순간 불씨가 붙었는지 삽시간에 조명이 타들어 가면서 연이어 불길이 치솟았다. 황급히 달려온 직원 여럿이 테이블에 있는 물을 뿌리고, 천장으로 옮겨가는 화마를 막아보고자 인테리어 장식을 뜯어서 끌어내렸는데 오히려 화근이었다. 여기저기 부착한 인화성 물질이 화재를 더 부추기는 격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대피 역시 녹록지 않았다. 사장이 잠가 둔 비상구 앞에 유독가스를 마시고 쓰러진 피해자가 속출했으며 직원은 돈 내고 나가라고 가로막았다. 유일한 탈출구였던 정문은 회전문으로, 겨우 소수만 빠져나갈 수 있었다. 연기를 목격한 소방대가 출동해 서둘러 구출과 진압에 나섰지만, 전체 1,000여 명 가운데 절반가량인 492명이 사망했고 130명은 부상을 입어야 했다.
해당 사건으로 점주가 징역 15년 형을 판결받고 상호는 보스턴에서 영구제명 당했으며 건물은 2년 뒤인 1944년 철거해야 했다. 당연히 그 정도로는 유가족에 충분한 위로나 보상이라 하긴 어렵다. 다만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면 이날을 기점으로 소방법 ‧ 건축법을 강화하고 소방설비 설치, 실내 방염대상 물품과 성능 기준 등에 관한 의무 규정을 추가했다는 점이다. 또, 회전문 양측엔 반드시 밀고 나갈 수 있는 출입구를 열도록 정했으며, 비로소 화재 유독가스의 위험성이 널리 알려져 유사시 젖은 수건으로 입을 가리고 대피하도록 권장하기 시작했다.

가연성 내장재로 지어진 고층 호텔, 구조 사다리차가 닿지 않아 발만 동동

대연각호텔 화재 현장(좌)과 침대 매트리스에 의지해 탈출하는 모습(우) / 출처 : 서울특별시 소방재난본부

우리나라에서 소방안전 규정을 획기적으로 바꾼 사례는 1971년 12월 25일 발생한 대연각호텔 화재사고가 대표적이다. 총 191명이 사망(실종 25명 포함)한 이 사고는 대한민국 사상 최악으로 평가받을 뿐 아니라 전 세계 호텔 화재 사건 가운데서 최대 규모로 손꼽힌다.
화재는 크리스마스 아침 9시 50분경, 1층 카페의 프로판 가스 폭발로 인해 촉발했다. 계단과 엘리베이터로 번진 화염은 단 1시간 30분 만에 건물 전체를 집어삼켰는데 나중에 조사한 결과, 빠른 진행의 원인은 다름 아닌 가연성 내장재였다. 예컨대 벽엔 한지를 발랐으며 문을 비롯한 인테리어는 목재로 이뤄져 있었다. 더군다나 방화문이 없는 개방형 통로는 도리어 불이 타고 올라가기에 좋았다. 승강기는 자동으로 멈춰 섰고, 비상계단과 스프링클러는 아예 부재했다.
아울러 22층은 그 때로선 국내에서 보기 드문 고층이었다. 그러나 피난할 길이 막혔을 뿐 아니라 옥외비상구 또한 없는 처지였기에 구조를 위한 고가사다리가 채 닿지 않는 7층 이상에 갇혔다면 그저 발을 동동 굴러야 했다. 인근 소방서의 초기 출동이 비교적 신속했고, 의용소방대, 경찰, 군인, 구조대 등 1,000명에 가까운 인원을 투입했지만, 다수 사상자가 나온 이유였다. 급기야 궁지에 몰리다 못해 무작정 투신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그 중엔 침대 시트나 매트리스에 의지해 기적적으로 목숨을 구한 생존자가 더러 있었지만, 대다수는 안타깝게 세상을 떠났다.

뒤늦게 의무화한 대형 건물의 스프링클러 시설

당시 손꼽히는 고층 호텔이었으나 화재엔 취약했던 구조 / 출처 : 서울특별시 소방재난본부

주지하다시피, 대연각호텔 건물 자재와 설계 구조에 허점이 많고 소방시설을 충족하지 못했기에 7시간 만에 완전 진압을 마치고 보니 사상자가 총 226명에 달했다. 여기에 속한 실종자 25명은 사고가 난 지 50년이 지나 최종적으로는 사망 처리했다. 덧붙여, 당시 화폐가치로 8억 3,820만 원이었던 재산 피해는 현재 물가를 반영하면 약 192억 5,000만 원이다.
다행히 이러한 사건은 절대 되풀이할 수 없다는 의지 하에, 국내 소방법과 건축법에 대대적인 변화의 바람이 불었다. 대형 건물 스프링클러 시설 설치가 의무로 바뀌었으며 「화재예방, 소방시설 설치ㆍ유지 및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은 실상 여기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동시에, 각종 지원을 받은 소방 분야는 눈에 띄는 성장을 향해 첫발을 내디딜 수 있었다.
‘모든 안전 기준은 피로 쓰여진다’는 말이 있다. 매우 마음 아픈 표현이지만, 고의적인 법 위반, 미처 깨닫지 못한 실수와 실패 등을 딛고 일어선 끝에 새로 써 내려간 소방안전 규정이 우리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재차 되새기게 하는 문구이기도 하다. 두 사고로 인해 유명을 달리하거나 후유증을 겪은 피해자를 기억하며 오늘 이 순간, 지난날의 가르침을 한 번쯤 떠올려보자.

글. 오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