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삐뽀삐뽀- 소방차가 빨간 이유
그것이 알고 싶다!

소방차라고 하면 많은 이가 분명 삐뽀삐뽀, 하는 사이렌과 빨간색부터 떠올릴 테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선 아직 붉은 소방차가 익숙한데 최근 세계적으로 노랑, 파랑, 분홍 등 다채로운 색을 사용하는 추세란다. 그러고 보니 새삼 궁금하다. 소방차는 왜 빨간 걸까. 또, 해외에서 컬러를 점차 바꿔 나가고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신속한 출동을 위해 도로 위를 질주하는 소방차를 보면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어딘가에 화재나 재난이 발생했다는 걸 짐작하곤 한다. 위험, 주의, 금지 등을 상기하는 빨간색이 포인트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소방차는 컬러의 상징성을 이용해 위급을 알리고 주위에 일종의 양해를 구하는 셈이다. 따라서 그 메시지를 충분히 인지했다면, 운전자는 선의로써 차선을 양보해야 하며 출동 구역에 주차한 이나 통행자는 수월한 진입에 협조할 필요가 있다.

온통 검은 차들만 다니는 거리에 깜짝 등장한 빨간색 소방차

그렇다면 수많은 색 가운데 어째서 빨간색일까. 앞서 이야기했듯이 대중의 이해를 구하기 위한 측면이 있으나 대체로 역사적 배경에서 유래를 찾는데, 두 가지 설이 존재한다.
우선 소화전 색깔에서 비롯했다는 주장이다. 미국의 1800년대는 소방서 간 경쟁이 치열하던 시기였다. 사고가 나면 어느 쪽이 먼저 달려오는지가 주 관심사였고, 작은 차이에 자부심과 패배감이 갈렸다. 지금 생각하면 참 별일 아니지만, 소화전 역시 마찬가지였나 보다. 제일 비싼 페인트를 바르려다 보니 빨간색을 골랐으며, 이 선택이 소방차에 영향을 줬다고.

[ 초창기 소방차(왼쪽)와 자동차 왕 헨리 포드(오른쪽) ]

거의 정설로 통하는 이야기는 의외로 자동차 왕 헨리 포드(Henry Ford, 1863~1947)와 관련 있다. 소품종 대량 생산으로 1920년대 자동차 업계를 휩쓴 그는 저렴한 차를 제작해 고객의 마음을 끌고자 했다. 따라서 고심 끝에 무난하고 비용이 적게 드는 검정으로 통일했더니 거리에 온통 검은 차만 다니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에 소방서는 차별화를 두기 위해 소방차를 빨갛게 도색했단다. 물론 세월이 지나면서 다양한 색감의 차량 모델이 등장했어도 한 번 정한 색은 현재까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따스한 날씨의 하와이는 노란색, 유방암 캠페인에 동참한 캐나다는 분홍색

[ 미국 마이애미의 이색 소방차(www.miamigov.com) ]

전통은 언젠가 깨지기 마련이다. 소방차의 색 또한 그렇다. 당연하게만 여겨온 인식이 이제 시대의 흐름에 밀려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이유는 다양하다.
가장 크게 대두하는 이슈는 바로 안전이다. 빨간색이 실은 이목을 집중시키기엔 적절치 않은 데다 출동 시 사고를 유발한다는 거다. 지난 1980년대 뉴욕의 검안사, 스테판 S. 솔로몬(Stephen S. Solomon)이 실증적 연구를 통해 발표한 보고서는 오히려 노란색과 녹색의 중간값인 라임 그린(Lime Green) 혹은 라임 옐로(Lime Yellow)가 적합하다고 결론지었다.

[ 스테판 S. 솔로몬이 제시한 라임 그린 색 / ⓒPantone ]

또한 1995년, 4년간 9개 시와 75만 대 소방차 경로를 추적한 결과물로써 빨간 소방차가 노란색일 경우에 비해 사고 위험은 3배, 교차로 사고는 2배나 높다고 밝혔다. 그런데 여기에 맞서는 이들이 그간 친숙하게 받아들인 색을 바꾸면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고 반론을 제기했다. 이로써 논란이 끊이지 않자 결국 2009년 미국 연방 재난관리청(FEMA, Federal Emergency Management Agency)이 절충안을 내놨다. 노란색 계열이 눈에 잘 띄지만, 붉은색을 응급 차량으로 받아들이는 관습도 중요하다고 인정한 것이다.

[ 따스한 기후를 색채로 표현한 하와이의 노란 소방차(www.hawaiiwildfire.org) ]
[ 시원한 색감을 자랑하는 나이아가라 폭포의 파란 소방차(https://niagarafalls.ca) ]

비단 안전이 아니더라도 오늘날 미국의 각 주와 더불어 세계의 다양한 국가는 자신들만의 개성을 담은 소방차를 선보이고 있다. 하와이는 따뜻한 날씨와 어울리는 노란 소방차를 이용하며, 나이아가라 폭포를 관장하는 소방서는 파란색으로 시원하고 상쾌한 감각을 살렸다.

[ 캐나다 몬트리올 주 미시소거의 유방암 퇴치 캠페인용 분홍색 소방차(www.signmedia.ca) ]

한편 2014년 캐나다 몬트리올 주 남부 도시 미시소거(Mississauga) 소방서는 캐나다 유방암 재단(CBCF, Canada Breast Cancer Foundation)과 협동해 캠페인을 벌이는 차원에서 분홍색 소방차를 운행했다. 각종 이벤트에 함께해 유방암 환자를 위한 기금 마련과 홍보에 도움을 주기 위해서다.

부를 불러들이고 악한 기운을 쫓는 붉은색, 한국에서 사라질까?

[ 1977년 3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최초 국산 소방차 인수식 ]

국내 최초의 빨간 소방차는 1963년 진흥공작소에서 미국 수입 차량을 들여와 개조한 모델로, 자동 펌프 장치가 달려 있다. 이전까지는 수동 펌프와 물탱크를 실은 차를 이용했다. 순수 국내 기술로 제작한 소방차가 출현한 건 1977년에 들어서면서다.
반세기 가까이 붉은색을 써온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부(富)를 불러들이는 동시에 악한 기운을 물리친다고 여겨온 풍습으로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왔다. 그러나 소방청이 화재 진압만 하는 게 아니라 구급, 구조 등 국민 곁에서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미지 개선과 안전을 위해 색을 바꿔보자는 의견이 서서히 나오고 있다. 앞으로 어린이들의 동요 속에서 항상 빨간색으로 표현하던 소방차를 재미있게 바꿔 부르는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글. 오민영(소방안전플러스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