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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을 구하는 사명감의 길을 따르는 사람들

도서 <골든아워>·<어느 소방관의 기도>

많은 이가 위기의 순간에 신을 찾는다. 제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한 한계 앞에서 나약함을 인정하고 지혜를 구하고자 함이다. 그런데 보통 살면서 몇 번이나 할까 싶을 만큼 절실한 기도를 매일 같이 마음속으로 올리는 존재가 있다. 바로 화재, 재난, 사고 등의 현장에 뛰어들어 인명을 구하는 사람들이다. 도서 <골든아워>와 <어느 소방관의 기도>는 이처럼 자신에 앞서 타인을 위해 기꺼이 나서는 사명감을 잉크 삼아 생생히 써 내려간 기록으로, 우리 사회에 진한 감동과 울림을 전한다.

응급환자의 생사를 가르는 귀중한 시간, 60분 <골든아워>

<골든아워 1·2> ⓒ흐름출판

2011년 아덴만 여명 작전부터 세월호 침몰사고, 판문점 조선인민군 병사 귀순 총격 사건 등 굵직한 사건·사고의 인명 구조 현장엔 항상 그가 있었다. 바로 아주대학교병원 외상외과장이자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으로 활약하는 이국종 교수다.
으레 의사라는 타이틀에 자연스레 따라오는 부와 명예가 아쉽지 않을 리 만무하다. 그러나 오히려 이와 동떨어진 곳에서 중증 외상에 신음하는 생명을 구해왔다. 응급실에서 기다리기보다 직접 나서서 발로 뛰는 이 교수는 항상‘60분’을 강조한다. 사고 장소로부터 병원까지의 환자 이송 과정에서 생사를 가르는 시간으로, 저서 제목이 <골든아워>인 이유다.
외과 의사만이 가진 특별한 시선을 통해 우리나라 중증 외상 의료시스템, 사고로 실려 온 환자들의 삶과 죽음, 의료진이 겪는 고된 일상 등을 담아낸 문장 하나하나는 거저 쓰이지 않았단다. 이를 증명하듯 단어와 문장 곳곳에 척박한 현실과 의사, 소방관, 구조대원, 군인 등의 분투를 날 것 그대로 펼쳐내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장 이국종 교수 ⓒCNN

<골든아워>는 총 두 권으로 이뤄져 있다. 그중 1권은 외상 외과에 첫발을 내디딘 후 마주한 우리나라 현 의료 상황에 대한 절망, 미국과 영국에서 국제 표준 외상 센터를 경험하고 국내에 도입한 동기 등을 상세히 설명한다. 또, 늘 위험한 사고에 노출된 육체노동자, 열심히 살아가는 이들의 일상을 파괴하는 교통사고,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못하는 가정폭력, 사회의 어두운 곳에서 벌어지는 조직 폭력 등의 사례를 풀어낸다. 더불어 아덴만 여명 작전에서 부상당한 석해균 선장을 소생시킨 비하인드 스토리를 통해 중증외상 치료 시스템에 대한 전 국민적 관심을 끌어낼 수 있었던 계기를 소개한다.

[좌] 청해부대 아덴만 여명 작전 시연 ⓒ2011 국방화보
[우] 2014년 세월호 침몰사고 구조 ⓒWikimedia Commons

2권에선 우여곡절을 거쳐 아주대학교병원이 경기남부권역외상센터로 지정받았으나 여전히 열악한 실상에 국제 표준에 맞는 시스템을 안착시키고자 안간힘을 다하는 과정을 그렸다. 중증외상센터 사업의 원칙과 본질이 흐려지지 않도록 노력했지만, 도통 쉽지 않은 여건은 결국 세월호 침몰사고라는 대참사에서 취약함을 드러낸다.
낙관 없이 묵묵히 걸어가는 길이라는 걸 알면서도 이국종 교수는 포기하지 않고 같이 걸어 나가는 사람들을 기록한다. 부상까지 감수하며 헬리콥터에 오르는 조종사와 의료진, 사고 현장에서 용감히 죽음과 싸우는 소방관과 구조대원, 온 힘을 다해 국민을 지키는 군인 등을 기억함으로써 대한민국 응급구조와 의료체계의 발전이 비로소 앞으로 나아갈 수 있기에.

1%의 가능성, 단 한 사람의 구조자라도 있다면 우리는 달려간다! <어느 소방관의 기도>

<어느 소방관의 기도> ⓒ쌤앤파커스

하루 평균 20분에한 번, 총 50차례 이상 출동이다. 매년 300여 명 정도가 부상, 7명은 순직한다. 장비 무게만 30kg로, 그나마도 낡았으며 방화복은 돌려 입는다. 우리 시대 소방관의 자화상이다.
그 자신의 안전마저 보장할 수 없다. 출동한 소방관 9명 가운데 6명이나 매몰사고로 숨진 2001년 홍제동 화재와 세월호 수색 비행 중 헬기 추락 사고가 그렇다. 인명을 구하려다 안타깝게 희생한 이들의 수를 모두 헤아리기란 시도조차 어려울 테다.
그런데도 사고 현장의 최전선을 치열하게 누비며 소방관으로 ‘살아간다’. 저자이자 청년 소방관인 오영환 씨는 이 과정에서 느낀 절망, 분노, 기쁨, 감동 등의 감정을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저서 <어느 소방관의 기도>에 채워 넣었다.
죽음을 가까이에서 지켜봐야 하고, 구할 수 있었는데 해내지 못했다는 부채감을 때때로 견뎌야 하는 일이란 애달프다. 소방관이 아니었다면 만나지 않았을 순간들을 직면하면서 사명감이 흔들리지 않도록 끊임없이 고뇌하고 성찰했다는 고백은 독자로 하여금 ‘당연하게 여겨선 안 되는 감사함’에 대해 곱씹어보게 한다.

산악구조에 나선 오영환 소방관(오른쪽) ⓒWikimedia Commons
나는 소방관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떨어지는 출동 지령, 생사의 갈림길에서 고통에 울부짖는 사람들, 흩어지는 생명들 가운데 구해낼 수 있었던 그 작고 어린아이. 소방관이 아니었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순간을 나는 매일같이 경험하고 있다. 살려내지 못한 이는 누구였던가. 1분 1초만 더 빨랐더라면. 실낱같은 희망에 기대어 간절히 기도했고, 너무도 자주 반복되는 좌절과 절망 속에 수없이 무너져 내렸다.

- <어느 소방관의 기도> 프롤로그 中

한 개인의 경험과 감상에만 머무르지 않는 이 책은 중간마다 별도로 들어가는 ‘소방관의 현장노트’에서 날카로운 시각으로 바라본 현실을 이야기한다. 비단 부상과 녹아내린 방화복, 각종 질병에 대한 노출 등만이 아니다. 분초를 다투는 응급환자 발생 시 출동해야 할 인력을 남용하는 사람들의 사례는 소방관 처우 문제와 부조리한 측면을 새삼 깨닫게 한다.

미국 뉴욕 주에 있는 ‘어느 소방관의 기도(A Firefighter's Prayer)’ 동상 ⓒHeather Paul

이 책의 제목인 <어느 소방관의 기도>는 1958년 미국의 한 소방관이 현장에서 끝내 구해내지 못한 아이들을 떠올리며 썼다고 알려진 동명의 시에서 차용했다. 자신에게 한 사람이라도 더 구할 힘을 달라는 간절한 바람은 세상의 모든 소방관이 가진 소망이다.
저자는 말한다. 오직 그 하나를 생각하는 소방관들이 소방 현실을 개선할 필요성에 대해 스스로 이야기한다면 이는 불편 때문이 아니라 오직 국민의 안전을 위한 일이라고. 열악한 처우를 동정해달라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이가 안전해질 수 있는 길이라는 걸 알아달라고 당부한 그는 1%의 가능성만 있다면 언제든 현장으로 뛰어가는 사람, 대한민국 소방관이다.

현장을 누비는 동료들과 함께하는 오영환 소방관(중앙) ⓒWikimedia Commons

글. 오민영(소방안전플러스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