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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마도 삼키지 못한 사랑과 희망
속초 장천마을의 어두훈·강인옥 부부

지난 해 12월 18일 행정안전부와 전국재해구호협회는 재난현장에서 남다른 희생정신으로 국민의 생명을 구한 14명의 의인을 선정해 ‘참 안전인’상을 수여했다. 그 중 강원도 속초시 장천마을의 통장부부인 어두훈(62)‧강인옥(57)님을 만나봤다.

Q. 당시 상황은 어떠했나.
A. 2019년 4월 4일 오후 7시 10분에서 20분 사이일 것이다. 지역 행정기관으로부터 불이 났으니 주민들에게 알리라는 연락을 받았다. 전화를 끊고 밖을 나가보니 불이 지척에 있었다. 발화지점이 여기서부터 한 4km 되는데 반은 내려온 상황이었다.

Q. 먼저 한 것은 무엇인가?
A. 일단 방송으로 알렸다. 바람이 불어서 금방금방 불이 내려왔다. 바람이 너무 강해서 방송이 잘 안 들릴 수 있겠다 싶어서 집사람에게 전화를 돌리라고 했다. 집사람이 전화를 돌리면 받은 사람이 또 옆집으로 전화를 하고 그런 식으로 모두 연락이 닿을 수 있게 했다.

Q. 마을 분들은 모두 무사했나?
A. 방송을 마치고 밖으로 나와 보니깐 그새 불이 1km 안쪽으로 와 있었다. 주위를 둘러 마을 사람들을 확인하다가 뭔가 잘못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세가 높으신 분들은 거동이 불편하시고 귀도 좋지 않으셔서 방송을 못 들을 수도 있고 전화가 닿지 않으신 분들도 있었다. 그래서 급한 마음에 직접 찾아가서 모시고 나왔다. 일단 불은 피하고 봐야했기 때문에 몸만 빠져나와 대피를 시켰다.

고성·속초 산불의 발화점과 장천마을의 위치. 전신주 개폐기에서 발생한 스파크로 인해 발생한 화마는 당시 습도 19%의 건조한 날씨와 최대풍속 32m/s의 바람을 타고 4km 떨어진 장천마을까지 고삐를 늦추지 않고 2시간여 만에 다다랐다.

Q. 그런 분들이 몇 분이나 되셨나?
A. 4, 5가구 정도 된 것 같다. 마을에 총 110가구 정도가 사시는데 원래 거주하셨던 주민들은 45가구 정도 되고 나머지 분들은 2년 전 즈음에 이주를 해 오신 분들인데 그 분들은 잘 대피를 하셨다.

Q. 진화 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A. 방송을 한지 30~40분이 지나자 소방서에서도 오고 시청 공무원들도 왔다. 불을 잡을 수 있는 방법을 같이 강구해봤지만 바람이 워낙 세고 삽시간에 번지고 있어서 도저히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다. 그래서 의논 끝에 사람 생명이 우선이라고 여겨 마을을 포기하기로 했다. 그래서 마을 회관에 모여 있던 주민들을 모시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를 했다.

Q. 주민 분들은 안전하셨나? 다치신 분은 없었나?
A. 다행이 없었다. 속초 시내에 자녀나 친인척이 있으신 분들은 갈 곳이 있어서 가셨고 그렇지 못하신 분들은 시에서 시내에 있는 초등학교로 대피하라고 해서 가보니깐 불이 시내에까지 인접해 있어서 그곳도 안전한 곳이 아니었다. 15분가량 갈 곳이 없어서 애를 태우고 있었는데 지인 분 중에 낙산에 사시는 분이 공간을 빌려주시기로 해서 그곳으로 모셨다.

아리랑 3호 위성으로 바라본 고성·속초 산불 상황. 검붉은 부분이 모두 화마가 삼켜버린 지역이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Q. 통장님은 그날 어떻게 보내셨나?
A. 가족들을 안전한 곳에 대피시키고 나름 마을의 책임자이다 보니 마음을 돌릴 수가 없었다. 마을을 통제하고 있어 들어가진 못하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는데 새벽 2시쯤 되니깐 불이 완전 해안가 쪽까지 타들어가서 더 이상 탈 것도 없었다. 그 즈음 되니 이젠 괜찮겠다싶어 마을로 들어가 보았다.

Q. 마을 상황은 어떠했나?
A. 아이고, (침묵) 들어와 보니 뭐, 그 때 생각하면 눈물이…. 온 마을이 전부 잿더미였다. 아직까지 불이 덜 꺼져가지고 옛날 목재집이 많다보니깐 불이 타는 과정을 다니면서 보니깐.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상황도 아니고. 그냥 들어와서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참, 뭐라 그래야 되나 지금 생각해보면 참담하다고 해야 하나. 그 때 심정은 뭐 어떻게 표현할 수 가 없다. 지금도 표현하기 힘들다. 가운데 있던 다섯 집 빼고는 모두 다 타버렸다. 새로 들어오신 분들은 공동주택을 지으면서 주변의 나무들을 다 제거를 해서 불이 닿지 않았고 원래 계셨던 45가구 중에서 25가구가 전소됐고 반파가 15가구 정도 됐다.

당시 마을의 상황을 떠올리며 눈물을 훔치시는 어두훈 통장님. 당황스러웠다. 게걸스러운 화마로부터 마을 주민들을 지켜낸 시민영웅일 것이라 여겼던 통장님이었지만 막상 만나 이야기를 나눈 눈앞의 사람은 또 한명의 피해자일 뿐이었다.

Q. 마을에 돌아와서 제일 먼저 한 것은 무엇인가?
A. 다음 날이 5일 오전 9시 즈음되니깐 마을 분들이 모두 들어왔는데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나. 우선 식사할 수 있는 여건이 하나도 없었다. 일단 마을회관을 공동으로 사용하면서 회관에서 임시 공동식사를 했다.

Q. 식사나 생활에 대한 자금이나 노동력은 어떻게 했나
A. 초창기 때는 구호물자가 없기 때문에 마을 자체에서 그래도 상황이 되시는 분, 피해를 덜 본 분들 중심으로 물자를 모았고 마을 부녀자들이 수고를 해주셔서 며칠 동안 마을회관에서 공동으로 생활을 했다. 그러다가 지자체에서 구호물자를 보내주고 정부와 지자체에서 임시거처를 마련해 줬다.

울창했던 산은 온데간데없고 황폐함만이 남은 건너 산

Q. 복구 과정은 어떠했나?
A. 불타 남은 것들을 보기가 싫으니깐 빨리 치워야하는데 철거하는 과정이, 나이 드신 분들은 평생 거기서 살고 자식도 키우고 했는데 애착이 있는 집이다보니 어르신들은 철거하는 과정에서 눈물도 많이 흘리셨다. 옆에서 보기가 너무 안타까웠다.

Q. 타버린 잔해는 어떻게 철거했나?
A. 인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군에서 병력을 지원해준다고 하고 주위에서 도와주신다는 분들도 많았지만 실제 인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 장비 아니면 일이 안되었다.

100년 가까운 식생들이 모두 불타버리고 베어졌다. 정부와 지자체가 복구에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이 곳곳에 보이지만 나무가 자라는 것은 기나긴 시간과 자연의 허락이 있어야만 할 것이다.

Q. 4월이면 농사를 준비해야하는 상황인데.
A. 마을회관에서 5일 정도 생활하고 임시거처를 마련해달라고 해서 지자체와 농협이 의논해서 농협중앙회 수련원이 여기서 2km 되는데 거기를 알선해줘서 거기서 생활하면서. 그리고 거기서 생활 안하시는 분들은 임대아파트에서 거주하고. 그래서 거기서 출퇴근하면서 농사를 지었다.

Q. 임시주거시설은 언제 마련이 됐나?
A. 화재 발생 후 20여일 정도 지난 후부터는 임시주거시설에서 생활할 수 있었다. 생각보다 발 빠르게 준비되어서 조금 놀랐다. 농사를 지어야 되고, 농사라는 것이 이런저런 일들이 많아서 주거지랑 떨어지면 불편한 점이 많은데 참 다행스러웠다.

장천마을의 임시주거시설. 처음 40여 가구가 임시주거시설에서 거주하다 이제 7분만 남으시고 모두 거처를 잡으셨다. 그리고 4가구는 곧 ‘임시’자를 떼어낸 곳으로 이주를 하시고 나머지 3가구도 현재 기초공사를 시작한 상황이다.

Q. 지원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나?
A.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되면 정부에서 지원이 되고 지자체에서도 지원을 해준다. 그 외에 성금, 전국적으로 성금이 많이 모아졌는데 정말 감사한 일이다. 마을 분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을만큼 지원을 해주는 것 같다.

Q. 1년이 지났는데.
A. 그래도 이정도 된 거면 회복이 빠르다고 본다. 확실히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된 것 같다.

마을 중심부에 있어 화마를 피한 소나무와 한창 마무리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새집. 저 소나무가 새집을 지키는 장승처럼 보인다.

Q. 이번 일을 겪으면서 느끼신 점이 있다면?
A. 영동지방은 기후적인 여건이 바람이 세고 건조하다보니 매년 크고 작은 산불이 안 난적이 없었다. 연세 많으신 어르신들이 하시는 말씀이 지금까지 이렇게 큰 불은 처음 보셨다고 하시더라. 느낀 점이라기보다는 바라는 점인데, 이번에 불이 나고 소방장비도 개선하고 한다고 하는데 지금까지 매번 불이 나고 하는데도 너무 장비나 시스템이 갖춰있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소방이나 방재에 대해서 지역의 특성에 맞게 정부나 지자체에서 예산을 집행하고 맞춤형 시스템을 갖추었으면 한다.

Q. 이번 산불의 영웅이시지만 어떻게 보면 피해자이시기도 하다.
A. 화재는 대부분 인재라고 생각한다. 우리 개개인이 조금만 조심한다면 화재를 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 지역은 봄만 되면 날씨가 상당히 건조하고 바람이 많이 분다. 이럴 땐 담배꽁초 하나만 잘못 버려도 순식간에 불길이 번지게 된다. 주민들은 지역의 이러한 특성을 고려해서 항상 조심하는 습관을 가져야한다. 등산이나 캠핑을 즐기시는 관광객 분들도 이런 점을 배려해주시면 감사할 것 같다. 봄만 되면 논둑이나 농사 짓다 생기는 부산물을 많이 태우는데 우리 농민 스스로도, 농민이 아닌 시민들도 그런 것은 자제하고 만약에 부득이하게 소각할 일이 있더라도 정해진 소각장에서 공동으로 행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스스로가 화재를 예방할 수 있는 방법들을 찾아가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화마는 큰 고통과 상처를 남긴 채 장천마을을 할퀴고 지나갔다. 하지만 그 황폐함만이 남아 있는 잿더미 속에서도 새로운 생명들은 조금씩 자라나고 있다. 봄이 오면 씨앗을 뿌리는 농부의 마음처럼, 새로운 희망을 품고.

글. 최호철(소방안전플러스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