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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앙이 되어버린 2019년 호주 산불,
그 결과와 풀어야 할 숙제

재앙이다. 달리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없다. 지난해 9월 2일 호주 남동부 뉴사우스웨일스 주에서 시작된 산불은 해를 넘어 2월 13일까지 6개월간 지속되며 한반도 전체 면적에 가까운 1,873만ha를 잿더미로 만들어버렸다. 이는 호주 전체 산림 면적의 14%에 해당된다.

BBC에 따르면 이번 산불로 인한 총 사망자 수는 10여명의 소방관을 포함해 최소 34명이며 실종자는 6명이 발생했다. 최소 주택 3,500채를 포함해 건물 5,700여채가 전소되었으며 야생동물 10억 마리 이상이 목숨을 잃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호주에만 서식하는 캥거루, 코알라의 피해가 뼈아팠다. 행동이 더딘 코알라의 경우 이번 산불로 인해 서식지가 30%이상 파괴되었으며 전체 코알라의 30% 이상인 8,000여 마리가 목숨을 잃은 것으로 추정되면서 멸종 위험이 고조되고 있다.

호주의 갈라파고스라 불리는 캥거루섬은 2/3가 잿더미가 됐다. 화재 전과 후. ⓒBoredpanda

환경에 대한 악영향도 적지 않았다. 산불로 인해 발생한 연기와 미세먼지가 한 때 일본에서 목격되기도 했는데 실제 NASA의 조사결과 호주 대륙과 대양을 넘어 남아메리카로 그리고 다시 호주로 되돌아 온 것이 발견되었다. 시드니 서부 지역에서는 1월 4일 기온이 48.9℃까지 올라가 당일 지구상에서 가장 뜨거운 지역으로 기록되기도 했다.

또한 1월 3일 뉴사우스웨일스 주의 일산화탄소 농도는 7800ppb 이상 치솟았는데 이는 서울의 대기가 매우 좋지 않을 때의 20배가 넘는 수치였다. 지난 1월 9일 미국항공우주국 NASA는 호주의 산불로 인해 4억t 이상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된 것으로 추정했는데 이는 호주 전체가 한 해에 배출하는 이산화탄소의 양에 맞먹는 수치며 NASA의 발표 이후 한 달 넘게 산불이 이어진 것을 감안하면 그 피해는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 환경보호국

문제는 산불로 인한 대기 악화가 그것에서 끝나지 않고 연쇄적인 효과를 일으켜 악영향을 증폭시킨다는 것이다. 이번 산불로 배출된 이산화탄소를 호주의 산림이 다시 흡수하기 위해선 족히 100년 정도의 시간이 걸릴 것으로 추정되는데 산림이 소실된 만큼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양이 줄어들어 온실화를 가속화시킨다. 이는 다시 기온 상승과 가뭄을 야기해 생태를 악화시키거나 산불의 발생 가능성을 더욱 상승시켜 또 다시 산림이 소실되면 걷잡을 수 없는 악순환의 굴레로 빠질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그렇다면 이번 호주 산불의 원인과 대안은 무엇일까? 지난 1월 6일 호주 뉴사우스웨인스 주 경찰은 산불 발생 후 2개월 동안 화재 방지 조항을 어긴 53명, 담배꽁초나 성냥을 버린 47명 등 총 183명을 법적 조치했다고 밝혔다. 그 중 의용소방대원인 19세의 브레이크 윌리엄 배너를 기소했는데 그는 남부 베가밸리 지역에서 7건의 불을 지른 뒤 도망간 혐의를 받고 있다. 이에 일각에선 이번 재앙이 인재라며 이들의 엄벌을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1월 18일 BBC의 보도에 따르면 이들의 방화로 인해 발생한 화재는 뉴사우스웨일스 주에서 발생한 화재의 1%에 지나지 않는다고 밝혔다.

화재의 주요원인은 극심한 가뭄에 의한 자연발화였다. 호주는 지구상에서 가장 자연발화가 빈번히 발생하는 국가이다. 1965년 이후 최소 강수량을 기록하고 있는 최악의 장기 가뭄이 이어지고 있고 12월 동안 40℃가 넘는 온도가 측정되는 등 고온현상도 발생했다. 1974년 발생해 1억1,700만ha를 집어삼킨 산불과 173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2009년 산불까지 실제 호주에선 매년 크고 작은 산불이 발생해 왔다. 이번 산불도 시드니 북서쪽 고스퍼스산 일대에서 발생한 벼락으로 인해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산불이 최악인 이유는 단일 발화점 산불로써는 유례가 없을 정도로 넓은 지역으로 화재가 번져나갔다는 것이다. 그것도 현대적 방재기술과 시스템 아래에서. 물론 기록적인 폭염과 극한의 건조한 날씨, 거기에 시속 30~40km에 이르는 강풍이 만나면 산불이 급속히 확산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오히려 이러한 요소는 근래 호주의 이상기후를 고려해봤을 땐 상수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호주 소방당국이 이번 산불에 대한 대응을 어렵게 해 상황을 최악의 사태로 치닫게 한 변수는 비정상적인 적란운, 바로 화염적란운(CBFG: Cumulonimbus Flammagenitus)이였다.

2017년 캘리포니아 산불에 의해 발생한 화염적란운 ⓒ벤투라 카운티 소방국

Pyrocumulonimbus라고도 알려진 화염적란운은 적란운의 극단적인 형태로써 화산폭발이나 대형 산불과 같은 열원 위에 형성된다. 2017년 3월 세계기상기구가 30년 만에 개정한 구름도감에 등록(정식명칭 Flammagenitus)된 화염적란운은 회색이나 검정색 또는 갈색을 띄며 고도 15km까지 두껍게 형성되는 밀도가 매우 높은 특수한 구름이다.

산불로 인한 열기로 공기가 뜨거워지면 먼지와 함께 뒤섞여 토네이도 형태로 상승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주변의 공기가 중심부로 빨려들어 화마에게 꾸준한 산소를 공급해주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이렇게 급격히 상승하는 기류는 고도가 높아질수록 빠르게 식으며 응축하여 구름을 형성시킨다. 중심부는 주변부로부터 계속 연료를 공급받아 공기를 밀어 올려 수직적으로 발달한 적란운으로 발달하는데 이것이 바로 화염적란운이다.

화염적란운은 중심부 온도가 1,000℃가 넘어가며 밀도 또한 매우 높아 주변에 심한 난기류와 이상기후를 발생시킨다. 흔히 주변부의 강한 하강기류와 함께 심한 돌풍을 일으켜 초속 50m에 이르는 바람이 불게 된다. 이와 함께 강우, 우박, 번개 등이 불규칙적으로 발생하게 된다.

ⓒ호주 기상청

문제는 이 화염적란운이 지킬박사와 하이디 같은 이중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인데, 적당한 습도의 기후라면 상승한 열기와 먼지가 수분과 응축하여 비가 내리면서 산불을 끄는 역할을 하는데 매우 건조한 호주 기후에는 수분이 거의 없어 주변에 마른벼락을 내리치고 이로 인해 무차별적인 산불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호주 소방당국을 속수무책으로 만들며 이번 호주 산불 피해를 키운 주요 원인이 되었다.

그렇다면 호주는 왜 이렇게 덥고 건조한 기후가 계속 이어지는 걸까? 일부 기상학자 또는 환경론자들은 그 원인이 지구온난화에 의한 이상기후라고 주장한다. 호주 기상청은 1910년 이래 호주의 1년 평균 기온이 1℃ 상승했다고 밝혔다.

2018년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는 특별보고서를 통해 2006년부터 2015년까지 10년 동안 지구의 평균 온도는 산업혁명 이후인 1850년부터 1900년 사이 평균보다 0.75~0.99℃ 가량 상승했다고 밝혔다. 그로 인해 발생한 후폭풍에 대해서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극지방의 얼음이 녹고 바다에선 산호가 죽어나가며 대지는 사막화되고 있는 것이 작금의 지구의 현실이다. 그리고 앞으로 지구의 온도가 2℃ 올라가게 되면 인류의 생존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라 경고하고 있다. 어쩌면, 호주의 산불과 살 곳을 잃은 북극곰은 같은 이유인지 모르겠다.

글. 최호철(소방안전플러스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