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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방화시설의 역사 VII

(차압제연설비)

화재가 발생하였을 때 불보다 더 무서운 것은 연기이다. 연기 속에는 일산화탄소, 시안화수소와 같은 독성, 가연성 가스가 섞여있어 조금만 마셔도 호흡장애를 일으킬 수 있어 위험하다. 또한, 다량으로 발생한 연기는 거주자의 시야를 방해하여 건물 밖으로 대피를 어렵게 한다.
최근에 발생한 대전 아울렛 지하주차장 화재, 2018년 1월의 밀양 요양원 화재, 2017년 12월에 발생한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에서도 대다수의 사람들이 연기확산을 피하지 못했고 결국 큰 인명피해로 이어졌다. 결국 안전한 대피를 위해서는 연기확산을 막는 건축시설의 방화문, 소방시설의 제연설비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방화문이 소극적으로 연기의 확산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면, 제연설비는 발생한 연기를 배기와 차단, 희석을 통해 제어함으로써 거주자의 피난을 돕는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소방시설법 시행령에는 제연설비를 설치하여야 할 대상을 정하고 있으며, 특히 화재실과 비화재실의 일정한 압력차를 두어 연기를 제어하는 차압제연설비는 특별피난계단이 설치된 11층 이상 또는 지하 3층 이하의 층, 비상용승강기에 설치하도록 되어있다. 그럼, 차압을 이용한 연기제어설비는 언제부터 설치되었을까? 이번 칼럼을 통해 간략한 차압제연설비의 역사를 살펴보고자 한다.

차압기술의 발단

아이러니하게 공기 속의 위험요소가 침투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차압기술의 발단은 화재와 무관한 전쟁에서였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추진하며 미생물전에 사용할 세균을 개발, 배양했다. 독일은 유독성 물질의 제조와 보관 장소에서 누출될 것을 대비해, 제조 장소와 보관 장소에 인접한 실을 두고 유독물질을 경유하도록 하였는데, 경유 거실에 일정한 압을 가하여 유독성 물질이 제조, 보관 장소 바깥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하였다. 또한, 경유 거실에는 공기배출설비도 있었는데 만약 유독물질이 누출된 경우 일정한 통로로 배출하고 그 과정에서 유독물질을 태워 2차 위험요소도 제거했다. 유독성 물질이 확산되지 않도록 인접 실을 만들고 압력차를 둔 것, 인접실로 누출된 유독성 물질을 강제 배출하여 다른 공간으로 전파되지 않도록 한 사실은 차압기술의 발단으로 볼 수 있다.
연기제어의 개념이 없던 1950년까지는 건물 내에서 화재가 발생하여, 피난공간의 연기만 적극적으로 빼주면 거주자의 인명피해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피난공간에서 빠진 연기만큼 압력도 낮아져 다시 연기가 피난공간으로 유입되는 문제가 발생하였고, 영국에서는 피난공간에 압을 가하여 연기 유동을 제어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겼고, 이에 따라 차압 제연에 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영국 소방연구소의 계단실 양압실험

1964년 영국의 소방연구소에서는 건물 안에서 계단에 압을 가하여 연기제어가 가능하다는 것을 검증하기 위한 실험을 진행하였다. 실험조건은 3층 백화점 건물에 지상 1층에 화재실을 만들고, 2층에는 압력유지 송풍기를 설치, 연기는 가연성물질의 혼합물을 실제로 태워 만들었다. 계단은 구획되어 있으며, 각 층의 문은 계단에 인접해 있다. 3층 백화점 건물 실험에서는 굴뚝효과와 같은 외부 환경요인에 의한 공기의 이동을 고려하지 않았다.

실험은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되었는데 첫 번째에는 송풍기로 계단에 압을 가하였고, 두 번째에는 계단에 압을 가하지 않았다. 실험결과 송풍기로 계단에 압을 가하지 않을 때는 적은 양의 연기가 계단으로 유입되고 연기가 계단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실험 결과 계단에 5Pa정도로 압을 가하면 연기가 계단으로 침입하지 않았는데, 이를 통해 5Pa정도의 양압 이면, 계단실 출입문이 잠깐 열릴 때 연기가 유입되지 않음을 알 수 있었다. 아울러, 대피통로에 12.5Pa 정도로 압을 가하면 연기제어도 가능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영국의 소방연구소는 두 번째 실험에서 실제화재와 유사한 환경을 조성했다. 4층 건물에 화재층은 피난층이고, 피난층에서 나무를 직접 태워 연기를 발생시켰다. 화재실 출입문 높이는 2m이고, 계단실에는 압력유지를 위한 송풍기를 2대를 설치해 동시운전 또는 단독 운전했다. 화재실의 화재하중은 220 kg/㎡ 정도이며, 이는 주택, 일반사무실, 병원과 같은 장소에서 발생할 수 있는 실제 화재크기이다. 외부 환경요인인 바람과 굴뚝효과를 고려하고, 계단가압을 진행한다. 실험당시 겨울철 건물 내ㆍ외부 온도차가 컸으며, 바람은 8.9 m/s 정도로 진행하였다.

실험결과 계단에 압을 가하지 않을 때에는 이전 실험과 유사하게 연기가 대피공간인 계단으로 빠르게 확산되었다. 하지만, 대피공간인 계단실에 문을 닫고 50Pa정도의 압을 가하니, 연기는 계단실로 유입되지 않았으며 문이 열려도 50Pa 정도면 연기제어가 가능했다.
화재실 출입문 누설틈새, 건물 안과 밖의 온도차로 중성대의 위치가 낮아졌으며 출입문 위쪽에 높은 압력이 형성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화재실의 온도 이외에 층고에 따라 연기를 유동시키는 힘인 압력차가 발생할 수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즉, 굴뚝효과가 없을 시에는 화재실과 계단사이의 압력차가 12.5Pa정도면 충분하고, 화재실의 팽창, 바람, 굴뚝효과를 고려해도 계단에 50Pa정도의 압을 가하면, 외부환경조건을 상쇄할 수 있는 만큼의 압력차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굴뚝효과가 없을 때, 계단실과 화재실의 압력분포, 겨울 철 굴뚝효과가 있을 때, 중성대 변화를 고려한 계단실과 화재실의 압력분포는 아래와 같다.

▶ 굴뚝효과 반영 전 계단가압 12.5 Pa [그림1]
▶ 굴뚝효과 반영 후 계단가압 50 Pa [그림2]

중성대가 건물, 화재실에서 공기의 수평적 이동에 관한 내용이라면, 굴뚝효과는 건물에서 공기의 수직이동현상이다. 건물 안과 밖의 온도차가 클수록 굴뚝효과에 의한 압력차가 커지게 된다. 굴뚝효과가 없으면, 화재실과 계단실의 압력차는 [그림1]와 같이 12.5 Pa정도의 계단실 가압이면 충분하다. 화재가 발생하여 [그림2] 굴뚝효과가 발생해도 설계 차압이 50Pa정도면 충분하다.

미국 부룩클린에서의 계단실 양압실험

1972년 미국 부룩클린의 공예 강습소의 피난공간인 계단통로에는 가압용 송풍기를, 옥상층에는 연기배출용 송풍기를 설치하고, 차압제연과 연기배출방법을 실험하였다. 실험조건은 22층 고층 사무실용 건물이며, 1층 계단에 대용량 송풍기로 가압하고, 옥상층은 1층에 설치한 것보다 작은 송풍기로 연기를 배출했다. 계단 출입문을 모두 닫고 1층과 옥상층의 압력차를 측정하고, 문이 1~2개 열렸을 때 계단실의 연기유입과 압력차를 측정한다.

7층에 실험용 방을 만들고 화재하중은 149kg/㎡ 정도의 나무, 폴리우레탄 등을 태웠다. 실험결과 계단실 문이 모두 닫힌 상태에서 1층 계단에 압을 가할 때 압력은 250Pa까지 올라갔으며, 계단 위쪽의 옥상층 압력은 75Pa정도로 유지되었다. 시간 경과 후 1층에서 75Pa로 압력이 줄었음에도 계단 위쪽의 압력은 20Pa정도로 유지되었다. 계단 출입문이 1~2개 열렸을 때 개방한 출입문 상층에서 압력차는 적었다. 이를 통해 계단실을 가압하면, 연기가 유입되지 않음이 확인되었고, 계단실 문을 3개 정도 개방해도 연기가 확산되지 않음이 확인되었다. 화재층인 7층과 복도에는 연기가 많았음에도 계단가압으로 안전한 대피통로를 제공한다. 화재층 내부에 화재크기를 고려한 적당한 연기배출구를 설치하고, 계단실 배출용 송풍기를 이용하면 연기배출에 효과적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캐나다 국립건축연구소의 개방된 계단문 평균풍속과 임계풍속 실험

캐나다에서는 10층 건물에서 다양한 실험조건으로 계단가압을 하는 화재실험을 진행했다. 특히 일시적으로 계단문을 열 때 계단실로 연기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막는 평균풍속도 측정하였다.

실험조건은 비화재실험과 화재실험을 진행하였으며, 2층인 화재층과 1층, 3층, 8층의 계단문을 순차적으로 열었다. 우선 비화재 실험에서는 계단문의 압력차를 2개 층에서 측정하고, 계단문의 풍속을 2층인 화재 층에서만 측정하였다. 비화재 실험에서는 화재층에서 개방된 계단문의 평균풍속은 0.54m/s ~ 0.66m/s 정도였다.

화재실험은 2층 외벽의 환기구를 닫고, 화재실 온도 450℃ 와 외기의 환기구를 연 상태에서 화재실 온도가 650℃ 정도로 높을 때 연기의 역류를 확인하였다. 화재실 온도 450℃ 일 때 화재층 계단문과 1층 피난문을 열었을 때 연기가 계단실로 들어왔다. 개방된 문의 상부에서 40% 정도의 계단실 연기 유입이 발생하였으며, 계단 출입문을 여는 각도를 줄여 계단실 연기의 유입을 막을 수 있었다. 2층 외벽의 환기구를 연 상태에서 화재실 온도가 650 ℃ 정도로 높았으며, 동일하게 연기가 계단실로 유입되었다. 계단으로의 연기유입속도는 1.31m/s ~ 1.57m/s 정도였다. 연가가 계단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막는 방연풍속은 1.8m/s 정도가 필요했다. 실험결과 화재층과 1층 피난문을 열면 계단실에 연기가 유입될 수 있음이 확인되었다. 화재층 자연배출구를 닫은 실험에서 화재온도가 121℃ 정도이면, 연기의 유입을 막는 풍속은 1m/s 보다 작으나, 1층 계단문을 열면 화재층의 압력이 증가하여, 계단실로 연기가 유입될 수 있다. 출입문을 여는 각도가 작으면, 계단실의 연기유입을 막을 수 있고, 화재층으로 전파되는 공기양도 적게 된다.

10층 동일 건물에서 부속실 단독가압을 측정하기 위한 실험조건을 갖추고 추가 실험을 진행하였다. 처음에는 부속실을 닫은 상태에서 시작하고, 2층 부속실문과 계단실 출입문, 1층 피난문, 마지막으로 3층 부속실문과 계단실 출입문 순으로 개방하였다.

화재온도는 200℃ ~ 460℃ 정도로 화재층에서 열린 부속실문에서 연기가 유입되었다. 200℃ ~ 460℃에서 각각 출입문의 각도에 따라 연기의 역류를 저지할 수 있었으며, 특히 460℃에서는 부속실이 있을 때 연기의 역류를 쉽게 막을 수 있었다. 부속실을 가압하면 계단실도 가압되어, 가압된 부속실이 일시적인 피난공간으로 큰 도움을 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방연풍속은 대피공간 출입문이 열릴 경우 연기의 유입을 막는 풍속을 의미하며, 방연풍속은 아래의 같다.

▶ 대피공간 출입문이 열릴 때 연기의 유입을 유효하게 막는 임계풍속, 방연풍속 [그림3]

차압제연설비의 제연구역, 차압, 방연풍속 용어 개념

국내 소방시설법에서 건축물의 용도와 규모, 수용인원을 고려하여 제연설비의 설치대상을 정하고 있으며, 제연구역의 선정과 제연방식은 소방청 고시인 특별피난계단의 계단실 및 부속실 제연설비의 화재안전성능기준(NFPC501A)에서 정한다.

제연구역이란 내화구조로 구획된 공간 내에 외부의 신선한 공기를 주입하여, 화재실에서 발생한 연기가 유입되지 않게 막는 공간을 의미하며, 제연구역에는 계단실, 부속실 또는 비상용승강기의 승강장이 있다.

차압이라 함은 화재 시 화재실과 제연구역과의 압력차를 말하며, 제연구역에서 화재실보다 높은 압력을 가해 연기가 누설틈새를 통하여 제연구역으로 유입되지 않게 한다.

방연풍속이란 거주자가 화재 시 대피공간인 계단 출입문을 통해 밖으로 나갈 때 출입문이 일시적으로 개방된다. 제연구역의 압력은 낮아지며, 화재실로부터 연기가 유입되는데, 이 때 연기의 유입을 막기 위해서는 추가적인 보충 공기가 필요하며, 제연구역으로부터 화재실로 보내는 보충 공기가 방연풍속이다.

한국, 미국, 영국 차압제연설비 규정 비교

국내의 차압제연설비 기준은 영국기준과 미국기준을 혼용해서 사용하고 있다. 국내의 최소차압은 스프링클러설비 설치 시 12.5Pa로 하고, 미설치 시는 40Pa 유지한다.
미국은 스프링클러설비 설치 시 국내와 동일한 12. Pa이고, 미설치 시 천장높이에 따른 화재크기를 고려하여 최대 45Pa를 적용한다. 영국은 굴뚝효과 등 외부환경요인을 고려한 50 Pa적용한다.

국내 방연풍속은 제연구역과 화재실 사이에 일시적으로 출입문 개방에 따른 보충량 0.7m/s 이상을 적용하며, 미국은 과도한 풍속으로 화재가 조장되지 않으면서도 연기층의 교란을 막을 수 있는 1.02m/s 정도를 적용한다. 영국은 소방용 계단실은 방연풍속 2m/s 이상이며, 일시적인 출입문 개방은 국내와 유사한 0.75m/s 이상을 적용한다.

맺음말

국내 건축물이 점차 고층화, 심층화, 대형화로 건축 환경의 급속한 발달을 이루었다. 이에 따른 거주자의 안전한 대피 또는 소방대의 원활한 소화활동을 해서는 차압제연설비의 성능 확보와 정책적, 기술적인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제정당시 거주자의 일시적인 출입문 개방을 고려하여 방연풍속 0.7m/s 적용했지만, 화재 중기 이후 소방대의 소화활동까지 고려한다면 최소한 2m/s 이상의 방연풍속이 필요하다. 또한 현재의 차압 기준은 스프링클러설비 설치 시 12.5Pa, 미설치 시 40Pa를 적용하지만, 연돌효과를 고려한다면 50Pa 적용이 필요하다.

국민 절반이 살고 있는 아파트의 경우 한 세대를 기준으로 생각하면 거주인원이 대체로 5인 이내이며, 화재 시 한 번에 대피가 종료되어 지속적으로 제연구역의 출입문을 개방되지 않는다는 가정으로 방연풍속을 미적용하고 있다. 반대로 국민 절반이 아파트에 살고 있으며 점점 고층화되어 거주밀도가 높아지는 현실을 생각하면 화재 시 많은 층의 출입문이 개방되므로, 아파트에 연기의 유입을 유효하게 방지할 수 있는 방연풍속 적용이 필요하다.

글. 중앙소방학교 예방안전학과(전임교수 서주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