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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내 소방 안전시설 의무설치의 유래,
브라질 조엘마 빌딩 화재

미국 9.11 테러 다음으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사고 / 출처 : Metropoles

전 세계에서 발생한 역대 고층 건물 사고 가운데 미국 9.11 테러 다음으로 가장 많은 희생을 치른 사례가 있다. 바로 브라질 조엘마 빌딩(Joelma Building) 화재다. 단지 법이나 제도가 소방 안전시설을 규정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기본적인 방화설비마저 갖추지 않아 생긴 이 참사는 각종 관련 지침이 탄생한 계기로 작용했다. 또한, 영화 <타워링>의 모델로서 50여 년이 흐른 현재에 이르기까지 경각심을 일깨운다.

수백명이 오가지만, 정작 소방 안전시설은 없는 초고층빌딩

25층 규모였으나 비상계단과 비상탈출구가 없었던 건물 / 출처 : Arquivo O Globo

지난 1971년 브라질 상파울루 시내 중심에 완공한 조엘마 빌딩은 당시 초고층 건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또한, 상업 용도에 따라 지어진 총 25층 규모엔 은행, 변호사 사무실 등이 들어서 있어 하루 수백 명이 오가곤 했다. 다만 오늘날 돌이켜 볼 때 상당히 놀라운 점은, 내부에 방화벽과 비상탈출구가 없었으며 유사시 작동할 스프링클러조차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심지어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은 오로지 중앙계단뿐이었다. 물론 소방 안전을 법적으로 뒷받침하는 제도가 없었던 시대이기에 간과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느슨한 안전의식은 엄청난 대가로 이어졌다.

내부에 가연성 소재가 많아 더욱 확산한 화재 / 출처 : Wikimedia Commons

1974년 2월 아침 8시에 12층 사무실에서 에어컨 전선 합선이 일어났다. 그저 자그마한 불꽃으로 멈출 수 있었지만, 가연성 소재의 인테리어 탓에 화마는 계속해서 번져나갔다. 나아가 나무 끈으로 장식한 셀룰로오스 섬유 타일 천장과 카펫, 커튼, 목제 가구 등에 닿아 더욱 활활 타올랐다. 설상가상으로 온갖 서류가 쌓여 있는 금융기관 층은 사태를 더 확산시켰다. 다행히 초창기에 상황을 감지하고 서둘러 대피한 300명은 무사했지만, 신고받고 오전 9시 30분 도착한 소방대는 이미 불길이 치솟은 15층 위로 올라갈 방도가 없었다. 복도에 유독물질과 연기가 가득해 진입 자체가 불가능했던 까닭이다.

12~25층을 휩쓴 플래시오버로 대피와 구조에 난항

옥상 위에서 구조헬기를 기다리는 인파 / 출처 : Wikimedia Commons

한편 안에 남아 있는 인파는 옥상으로 향했다. 일부는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는데 가동이 중단하면서 갇히고 말았다. 별 탈 없이 올라간 171명 또한 희망은 보이지 않았다. 구조 헬기가 다가서려 했으나 연기로 시야가 가렸고, 착륙할 지점이 여의치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옆 건물에서 줄로 만든 임시 다리를 따라 18명을 겨우 구조하는 성과가 있었다. 그러나 곧 섭씨 1,000℃에 다다르는 플래시 오버(Flashover)*가 12~25층을 휩쓸면서 열기를 버티지 못하고 뛰어내리는 희생자가 속출했다. 황급히 소방용 사다리차를 투입했지만, 11층이 한계였다.
화재가 사그라든 시점은 오전 10시 30분경이었다. 안타깝게도 진압에 성공해서가 아니라 전부 태우는 바람에 연소할 대상이 없어서였다. 헬기가 맨 위층의 100여 명을 구하고 나서 뒤늦은 수습이 이뤄졌다. 나중에 확인한 결과, 전체 750명 가운데 189명이 사망하고 300명이 부상을 입었다.
*플래시 오버(Flashover) : 전실화재라고도 하며, 공간 전체가 한순간 화염에 휩싸이는 현상

뒤늦게 깨달은 소방 안전의 가치

희생자를 추모하는 공간 / 출처 : Wikimedia Commons

화재가 지나간 자리는 더 이상 이전과 같지 않았지만, 계속해서 슬퍼할 겨를이 없었다. 브라질 전역을 비롯한 전 세계가 뒤늦게 빌딩 내 소방 안전시설 규정에 나섰으며 스프링클러, 비상구, 비상계단 등을 설치하기 시작했다. 특히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선 23m 이상인 모든 건물은 비상 대피를 위한 옥상 헬기 착륙장 마련을 법적으로 의무화했다.
그런가 하면, 불이 났을 때 엘리베이터 사용을 지양하는 지침이 널리 알려졌다. 실제 해당 사고에 의해 승강기에서 갇혀 사망한 13명은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운 데다 DNA 신원확인 기술이 발달하지 않아 결국 공동묘지에 합장해야 했다.
아울러 영화 <타워링>은 조엘마 빌딩 화재를 모델로 방화시설이 없는 고층빌딩 사고 위험성 등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며 자칫 느슨해지기 쉬운 안전의식을 상기하는 데 일조했다. 비록 희생은 컸지만, 늦게나마 반면교사 삼아 올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었던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