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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들어오면 ‘먼저’ 배려해야 하는 생명의 소리, 사이렌

소방차에 장착한 사이렌 / 출처 : Wikimedia Commons

직접 마주하지 않았지만, 어디선가 사이렌이 들려오면 분명 화재 등 위급한 상황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경광등을 켠 소방차가 출동한 곳엔 반드시 구조 요청이 기다리는 까닭이다. 주위에 위험을 알리고, 도로 내 차량이 먼저 길을 터주도록 시급성을 전하는 이 신호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널리 통용하고 있다.

지나가는 선원을 유혹하는 감미로운 노래에서 위급 신호로

반짝이는 경광등을 인지하기 전, 사방에 울리는 사이렌이 존재감을 드러낸다. 인근에 소방차의 등장을 알리는 이 소리는 사고나 재난을 신속하게 전달하는 만큼, 사실 날카로운데 정작 어원은 아름답다 못해 감미로운 목소리라고 한다.

오디세우스를 유혹하는 세이렌 무리 / 출처 : 호주 빅토리아 국립박물관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영웅, 오디세우스는 무려 10년 동안 이어진 트로이 전쟁에서 승리를 거머쥐고 귀향길에 올랐다. 오늘날처럼 초고속 통신망이 없는 시대였기에 가족에게 근황을 전하긴커녕 생사조차 알리기 힘들었던 그는 당연히 귀환을 서둘렀을 테다. 그런데 일전에 바다의 신 포세이돈을 분노케 한 대가로 고난을 경험했고, 종래엔 죽을 고비마저 넘겨야 했으니 바로 반인반조 혹은 인어로 묘사하는 세이렌(Seiren)을 만난 탓이었다. 세이렌은 지중해에서 살아가는 마녀 종족으로, 지나가는 배의 선원을 노래와 연주로 홀려 익사하도록 유혹하곤 했다.

생명을 구하는 신호 / 출처 : Pixabay

결과적으로 영웅담에서 선한 의지가 패하는 법이 없듯, 주인공은 같이 여정을 떠난 부하 일동과 힘을 합해 고난을 무사히 이겨낸다. 반면, 전설에 의하면 세이렌 무리는 처음으로 맛보는 패배감에 낙담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전해진다.
흥미롭게도, 앞서 설명했다시피 나그네를 해하는 존재는 시간이 흘러 현재 오히려 생명을 살리는 사이렌으로 다시 태어났다. 덧붙여 생김새는 우리가 잘 아는 브랜드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름 아닌, 스타벅스 로고 속 미소 짓는 여인이다.

긴급자동차인 소방차의 음량 기준은 30m 이내에서 90~120㏈

법적으로 대략 90~120㏈ 음량을 규정하고 있다 / 출처 : Pixabay

한편 우리나라에선 사이렌을 두고 새로운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소방차가 주택가로 들어설 때 소음이 거슬린다는 민원이 빗발쳐서다. 그러나 도로교통법 제3조2항에 따르면 긴급자동차는 출동 시 반드시 사이렌과 경광등을 의무적으로 켜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한, 소리는 근방 30m 이내에서 90~120㏈로 울려야 한다.
그럼, 해외에선 어떻게 대응하고 있을까. 단적인 예로, 미국은 결코 음량 조절에 대해 타협하지 않는다. 물론 최대 수치인 120㏈은 항공기 이륙 시 엔진 굉음과 유사한 수준이기에 청력 손상을 호소하는 소방공무원이 적지 않다. 실제 소방차 내부 방음 처리를 제대로 해 달라는 소송을 건 사례가 존재할 정도다. 다행히 이러한 사정은 올바른 청력 보호 대책 마련으로 이어졌다. 별개로, 사이렌을 줄여야 한다는 논의는 찾아보기 어려우며, 유지해야 한다는 여론이 대다수다.

안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이렌 / 출처 : Pixabay

일부 민폐라는 의견이 있지만, 부득이하게 사이렌을 울려야 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긴급 출동에 나서는 소방차는 빠른 속도로 달려 나가야 하는데 상황을 알리지 않는다면 미처 알아차리지 못한 다른 차량과 추돌하기 십상이다. 도로 안전과 신속한 사고 대응을 위해 잠시 겪는 불편은 감수해볼 만하지 않을까.
사이렌을 울리며 우리 곁을 빠르게 스쳐 가는 소방차는 서울 기준으로 해마다 12만 7,000회가량 출동하며, 시민 2만여 명을 구조하고 있다. 과연 생명을 구하는 소리다운 활약이다

글 : 오민영(웹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