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4월 4일 23시 53분경,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의 도로변에서 원인 미상으로 발생한 불은 1996년의 고성 산불, 2000년 동해안 일대의 산불에 이어 또 한 번 강원도 지방에 끔찍한 피해를 남긴 대형 산불로 이어지게 됩니다.
산불 발생 당시, 화재가 발생한 도로변을 지나던 주민이 불길을 목격하고 곧바로 119에 신고를 했습니다. 경찰에 따르면 신고자가 불을 처음 목격했을 때는 반경이 20∼30m 정도였다고 해 불이 시작됨과 동시에 신고가 이루어진 상황이었습니다. 화재신고는 양양군청의 산불진화대로 전달되었고, 당시 대기 중이던 전문진화대 17명이 곧바로 현장으로 출동하였으므로, 초동 대처에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진화대가 현장에 도착하는 사이 이미 산불의 규모는 반경 100m 정도로 확산돼 있었고 강풍 속에서 불꽃은 순식간에 이곳저곳으로 옮겨 붙고 있었습니다. 야간에 발생한 화재라 헬기지원이 불가능한 상태에서 소방 당국은 인력과 소방차에 의지한 진화 작업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인근 주민들에게 대피령을 내리고 모든 소방차를 산불지역과 주택밀집 지역에 투입해 산불이 가옥으로 옮겨 붙는 것을 막는데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산불이 매우 광범위한 지역으로 확산되어 산불을 막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4월 5일 오전 6시, 지원요청을 받은 산림청 헬기가 출동하여 공중진화작업을 개시하였습니다만, 곳곳에서 가옥이 전소되는 등의 피해가 속출, 이재민이 늘어나는 상황이었습니다. 강풍을 타고 발생지점에서 수 km를 이동한 산불은 오전 7시 경 낙산해수욕장 내 소나무 단지에 옮겨 붙어 1km 구간의 울창한 송림이 훼손되었습니다.
산불은 이 날 오전 10시를 전후하여 일단 진압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마침 같은 날 이웃 지역인 강원도 고성에서도 산불이 발생했던지라, 양양 지역에 투입되었던 진화헬기 일부를 고성으로 이동시키고 남아 있는 잔불을 정리했습니다.
그러나 오후 1시 30분을 지나 바람이 다시 강해지기 시작해 곳곳에 산불이 다시 일어나게 됩니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지기 시작한 산불은 결국 낙산사를 전소시키게 됩니다.
산불이 설악산 방향으로 계속 진행되자, 저녁 7시 경에 소방 당국은 산불이 설악산까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저지선까지 구축하여 진화계획을 세우는 상황까지 이르게 됩니다. 다행히도 저녁이 되자 바람의 기세가 수그러들고, 산불의 진행속도도 더뎌지게 되었습니다.
다시 날이 바뀌어 4월 6일 새벽, 지상진화인력을 투입하고 헬기진화 작업을 재개해 큰 불을 잡고 오전 8시 경 잔불정리에 들어갑니다. 정오가 지나고 모든 상황은 종료되었습니다. 약 이틀간의 산불과의 사투가 끝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식목일에 발생한 강원도 양양 산불은 17개 분야에 총 400여억원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973ha의 산림이 소실되었고 163가구 418명의 이재민이 발생하였습니다. 그 밖에 창고 및 부속건물 309동, 축사 22동, 가축 3,551마리, 비닐하우스 19동, 군사시설 12개소, 문화재 22개소, 농기계 650대 등 많은 피해가 발생했습니다. 무엇보다도 낙산사의 유구한 세월을 함께해 온 동종이 화마에게 삼켜져 사라져버렸다는 점에서 이 화재는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2005년 양양 화재는 낙산사 소실이 있었다는 점에서 더욱 뼈아픈 산불 사건으로 기억됩니다. 2008년 숭례문이 방화로 인해 전소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오랜 역사를 간직한 소중한 문화재를 잃은 안타까움이 가슴 깊이 남아있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당시 화재로 소실되었던 낙산사에 대해서 좀 더 살펴보겠습니다.
신라의 고승 의상대사가 671년에 세운 낙산사는 1340여 년의 오래된 역사를 간직한 데다 동해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고 있어 예로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서 관광객들이 즐겨 찾는 명승지입니다.
그런데 낙산사는 화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안타까운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해방 후 한국 전쟁 등 굵직한 역사적 사건을 만날 때마다 불타 사라지고 중건을 반복하는 숱한 고난을 겪었습니다. 참으로 기구한 운명을 지녔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러한 낙산사가 2005년에 또 화마를 만난 것입니다.
앞서 화재의 경과에서도 언급했습니다만, 4월 5일 오전 7시 경에 낙산해수욕장의 소나무 숲이 불타버립니다. 낙산사는 낙산해수욕장과 지척에 있었기 때문에, 오전 7시 30분 낙산사 사수 등 진화대책이 강구되었고, 낙산사를 산불로부터 지켜내는데 일단 성공합니다. 그러나 완전히 진압된 줄 알았던 산불이 낮에 다시 발생해, 오후 3시 경에 낙산사 서쪽 일주문을 태우고 절의 중심법당인 원통보전으로 옮겨 붙습니다.
오후 3시 50분, 강풍 때문에 헬기작업을 통한 낙산사 진화가 어렵다는 통보가 날아옵니다. 다음 항목에서도 언급하겠지만, 당시 최대풍속이 초속 29m인 기상상황에선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 사찰 내에서 진화 작업에 나선 소방차마저 불에 탈 정도였으니 강풍을 동반한 산불의 위력이 어마어마했음을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결국 오후 4시 42분, 낙산사는 전소되고 맙니다.
이 화재로 인해 관세음보살을 모신 원통보전과 이를 에워싼 담인 원장, 홍예문, 요사채 등이 소실되었고, 조선 8대 임금인 예종이 아버지 세조를 기리기 위해 만든 낙산사 동종(보물 479호)은 형체도 없이 녹아내렸습니다.
낙산사는 화재가 발생한 다음해인 2006년부터 여러 차례의 복원작업을 거쳐 2011년에 옛 모습을 되찾았습니다.
산불은 가을, 겨울에 많이 일어날 것이라는 인상과는 달리 주로 봄에 집중되어 일어납니다.
10년간(‘07~’16년) 발생한 산불의 연평균에 관한 통계에 따르면, 봄철(3~4월)에 발생한 산불은 전체 발생 건수의 49%(194건)를 차지하고, 피해면적의 비중도 78%(372ha)나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형태는 작년 2016년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 월별 산불 발생 기록 >
(단위 : 건, ha)
구분 | 1월 | 2월 | 3월 | 4월 | 5월 | 6월 | 7월 | 8월 | 9월 | 10월 | 11월 | 12월 | |
---|---|---|---|---|---|---|---|---|---|---|---|---|---|
10년평균 | 건수 | 30 | 49 | 100 | 94 | 38 | 24 | 2 | 3 | 6 | 14 | 19 | 14 |
면적 | 27.02 | 21.58 | 158.70 | 213.73 | 23.54 | 5.99 | 0.18 | 0.49 | 1.08 | 3.29 | 11.90 | 10.55 | |
‘16년 | 건수 | 36 | 62 | 116 | 86 | 21 | 28 | 1 | 14 | 5 | 1 | 9 | 12 |
면적 | 8.78 | 20.49 | 127.91 | 186.97 | 18.7 | 3.74 | 0.01 | 1.87 | 2.23 | 0.03 | 4.74 | 2.18 |
출처 : 산림청 2017년 산불방지 대책
봄에 산불이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우선 건조한 날씨를 들 수 있습니다. 아래 영상(1분 17초 부분)을 통해 수분이 적은 건조한 나뭇잎에서 불이 더 빠르게 번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강원도 지역의 경우 산세가 높아 비가 내려도 물기를 오래 저장하지 못하여 대지가 바로 건조해지는 것도 산불에 취약한 이유입니다.
여기에 강원도 동해안의 경우, 대형화재가 일어나기 쉬운 지역적 특성이 가을·겨울에 발생하는 산불과 다른 점이라고 하겠습니다. 아래 표를 보시면 동해안에 인접한 지역들에서 산불이 일어나 막대한 피해를 입었습니다.
< 강원도 동해안 대형 산불일지 >
날짜 | 산불이 발생한 장소와 피해면적 |
---|---|
1996년 4월 23일 | 고성군 죽왕면, 3700ha |
2000년 4월 7일 | 고성군 토성면, 2696ha |
2000년 4월 7일 | 강릉시 사천면, 1447ha |
2000년 4월 7일 | 동해시 삼화동, 2244ha |
2000년 4월 7일 | 삼척시 근덕면, 16751ha |
2004년 3월 10일 | 속초시 노학동, 120ha |
2005년 4월 4일~6일 | 양양군 양양읍, 973ha |
출처 : 동해안 불 왜 잦나 - 세계일보 2005년 4월 6일
영동지방에는 해마다 봄이 되면 강한 남서풍이 불어오는데, 이 남서풍이 태백산맥을 넘게 되면 초속 15~20m의 태풍 급 강풍이 동해안으로 몰아칩니다. 전문가들은 이를 ‘양간지풍(양양과 간성 사이에 부는 바람)’ 혹은 ‘양강지풍(양양과 강릉 사이에 부는 바람)’이라고 부릅니다.
1996년 고성 산불, 2000년 동해안 산불, 이번에 다루는 양양 산불 모두, 양간지풍이 피해를 확산시키는 큰 원인이었습니다. 실제로 화재 진압이 한창이던 4월 5일 오전 5시 양양·대관령 지역의 순간 최대풍속은 초속 26m를 기록했습니다. 양양 산불은 이러한 강풍을 타고 낙산해수욕장의 소나무 숲과 낙산사를 삼킨 무서운 화마가 되었습니다.
산불은 발생 자체가 비극이지만, 산은 우리 일상과 닿아있는 장소이기 때문에, 산불 발생 시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를 상식적으로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등산을 즐기시는 분이라면 산불 발생 시 대응 요령을 이해하고 계시는 것이 좋습니다.
강원도 양양 산불도 확실하게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담뱃불이 원인인 것으로 추정되었던 만큼 입산자 실화에 대해서는 각별한 주의를 요합니다. 입산자 실화의 위험성을 알기에 등산객 등 입산자들을 상대로 금연 캠페인, 인화물질 반입 금지, 불법 무단 입산자 단속 강화 등의 대비활동이 항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산불은 최근 10년간(‘07~‘16) 연평균 394건 발생하였고, 이로 인해 산림은 연평균 478ha(1ha = 약 3천 평)가 소실되었습니다. 올해 들어서는 3월 7일까지 92건의 크고 작은 산불이 발생해 12.43ha의 피해를 입혔습니다. 아무리 대책을 강구하고 캠페인활동을 벌여도 간간이 발생하는 산불에 눈을 뗄 수 없는 이유입니다. 산림청은 올해도 1월 25일부터 5월 15일까지 111일 동안 ‘봄철 산불조심기간’을 설정해 산불예방에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산림을 가꾸는 데는 수십 년이 걸리지만, 한 번 산불이 일어나면 순식간에 모든 것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소실된 산림을 복구하려면 처음에 산림을 조성했던 기간 이상의 세월을 필요로 합니다. 산불과 관련된 공익광고 한 편과 함께 이번 호 기사를 마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