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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보다 1만 배 뛰어난
후각으로 최대 1km 밖의 자취를 찾아내다

어떤 냄새든 귀신처럼 구별하는 후각과 소머즈 부럽지 않는 두 귀를 가진 인명구조견은 혼자서 구조대원 30명 이상의 몫을 너끈히 해낸다. 지난 1998년 국내 도입 이래 3,600여 차례의 출동을 통해 약 300여 명의 소중한 생명을 구한 인명 구조견은 이제 명실공히 재난 현장의 일등 공신으로 사랑받고 있다.

지난 2016년 10월, 산책에 나섰던 80대 노인이 홀연히 사라졌다. 경찰이 곧장 헬기 등을 동원해 주변 수색에 나섰지만, 도통 오리무중이었다. 그런데 인력과 각종 장비가 24시간이 지나도록 찾지 못한 실종자를 인명 구조견 ‘수안’이 갈대 늪에서 발견해 무사히 구해낼 수 있었다. 투입한 지 불과 한 시간 만의 일이다.
활약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나라 인명 구조견의 전설, ‘백두(2012년 은퇴)’는 2008년 중국 쓰촨성 대지진, 2011년 동일본대지진 등 67개 재난 현장에서 15명을 구조했다. 심지어 에콰도르 이바라 소방서 소속의 ‘다이코’는 2016년 4월 발생한 규모 7.8의 강진으로 매몰된 시민 7명을 살리고 탈진으로 숨을 거둔 바 있다. 이처럼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라면 망설임 없이 달려가는 인명 구조견은 인간보다 무려 40배나 밝은 청각과 1만 배 발달한 후각을 이용해 요구조자를 탐색한다.

일반견 가운데 20%만 합격할 정도로 엄격한 도입 기준…식사는 하루 한 끼만 허용

강도 높은 작업에 동원하는 만큼 선발 과정은 만만치 않다. 먼저 훈련견 도입평가기준에 따라 6~12개월의 일반견을 대상으로 수색능력, 소유욕, 사회성, 활동성, 적응력 등 5가지 시험을 시행하는데 보통 10마리 가운데 8마리가 탈락한다. 그렇다 보니 잠재 가능성을 높이는 차원에서 현재 활동하는 개체를 부모로 둔 강아지가 대를 잇도록 조기 교육 하는 등 다양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2012년 농촌진흥청이 앞서 소개한 백두의 유전자 복제에 성공한 사례 역시 그 일환이라고 할 수 있다.
어려운 시험을 통과했다고 해서 끝이 아니다. 우선 예비구조견 자격으로 핸들러((Handler, 담당 운용자)와 친해진 다음 18개월간 장애물 적응, 조난자 수색 등의 훈련을 수행한다. 이로써 갈고닦은 실력을 공인 인명 구조견 인증평가시험에서 발휘해 합격하면 전국 각 시도에 보내진다.

정식 인명 구조견으로서의 삶은 그야말로 인내의 연속이다. 감을 잃지 않기 위해 연 120시간의 정기 훈련을 의무 수료해야 하는 건 물론, 식사는 하루 한 끼만 먹을 수 있다. 식후에 갑작스레 달리면 건강 이상으로 목숨을 잃을 수 있는 데다 원활한 활동을 위해 날렵한 몸매는 필수인 까닭이다.

목에 작은 나무통을 매고 험준한 산을 넘나드는‘성자’

인명 구조견이 인류 역사에 등장한 계기는 상당히 흥미롭다. 유럽 중세시대에 스위스-이탈리아를 연결하는 교통로는 생베르나르(Saint Barnard, 영어로 ‘세인트버나드’) 고개가 거의 유일했는데, 험준하기로 이름난 알프스 산맥에 있는 탓에 조난자가 자주 발생했단다. 망통(Menthon)의 성자 버나드가 이를 안타깝게 여겨 인근에 구호를 위한 수도원을 세웠고 초기엔 수도자들이 직접 위험에 처한 여행객을 구하는 데 앞장섰다.
그러나 아무래도 인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가파른 지형을 오가는 과정에서 체력이 금세 동나는 데다 폭설이 내리면 요구조자를 미처 보지 못해 지나치기 일쑤였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냄새에 예민하면서 앞발로 땅을 파는 습성이 있는 개를 이용해보기로 하고 로마에서 들여온 튼튼한 잡종견이 바로 세인트버나드다. 우리에겐 영화 <베토벤> 등을 통해 친숙한 품종으로, 덩치가 크고 활동성이 높아서 웬만하면 지치는 법이 없다. 또, 성격이 온순한 데다 털은 부드럽고 촘촘해 보호와 체온 전달에 단연 으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다행히 새로운 구조 방식은 효과가 높았다. 네 마리가 한 조를 이뤄서 산을 돌아다니다가 추위로 정신을 잃은 사람을 확인하면 저체온으로 사망에 이르지 않도록 따스하게 에워싼다. 목엔 작은 나무통을 매고 있는데 안에 든 와인이나 브랜디를 마시고 기력을 회복해서 안내를 따라 수도원으로 찾아오라는 배려다. 이로써 이름처럼 17세기 후반부터 무려 3세기 동안 2,500명의 생명을 살린 성자(Saint, ‘세인트’)들은 길 잃은 자를 삶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후 독일산 셰퍼드, 래브라도 리트리버, 보더콜리, 스패니얼 등 다채로운 품종이 명맥을 잇고 있다.

기량을 맘껏 뽐내는 경진대회를 통해 최고 실력의 탑 독(Top Dog)을 가리다

좌우 50m에서 최대 1km까지 흩어져 있는 냄새로 위치를 파악할 뿐만 아니라 열을 감지해 대상의 생사까지 알 수 있다는 인명 구조견의 감각은 최신 기술이 부럽지 않다. 일찍이 1900년대 중반부터 현장 활용을 목적으로 양성 체계를 갖추고 시행해온 이유다.
크게 산악·재해·설상 구조견으로 분류해 상황에 적합한 전문 훈련을 받은 인명 구조견은 UN 국제수색구조 가이드라인(UN Insarag Guideline)에서 국가적 차원의 재난 대책 수단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 같은 명성을 뒷받침하고자 1993년 창설한 국제인명구조견협회(International Rescue Dog Organization, IRO)는 ▲공인 자격에 대한 심사기준 지정 ▲수준 유지를 위한 세계 경진 대회 개최 ▲출동 상황 발생 시 적재적소 파견 주관 등을 담당한다.
수중 구조견 등 새로운 분야에 대한 개척이나 보유 두수(약 2,000여 마리)에선 미국을 따를 데가 없으나 산악구조견 훈련 시스템과 실력은 영국의 국제구조견협회(Search And Rescue Dog Association, SARDA)를 최고로 꼽는다. 재해 구조견 분야에선 스웨덴이 막강한데 구소련의 공습 영향으로 유난히 관련 구조 활동이 빈번했기 때문이라고.

올해 도입 11주년을 맞이한 우리나라는 행정자치부령 제167호(구급대 및 구조대의 편성·운영에 관한 규칙, 2002. 05)에 의거해 인명 구조견을 공식 119 구조장비로 등재하고 있다. 그러나 전국에서 활동하는 수는 28마리(2019년 기준) 정도인 만큼, 잦은 출동과 부상 등을 고려해 2021년까지 69마리를 양성할 계획이다. 더불어 소방청 중앙119구조본부에선 매년 <소방청장배 전국 119 인명 구조견 경진대회>를 열어 핸들러의 출동 현장 운용과 인명 구조견의 수색 능력 등을 평가하는 등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대회에서 최고의 기량을 선보인 개체는 최우수 인명 구조견을 의미하는 탑 독의 영예를 안는다.

한평생 사람을 위해 봉사한 인명 구조견을 위하여

갖은 위험과 재해로부터 요구조자를 구해내기 위해 현장에 뛰어들길 마다치 않는 인명 구조견은 대체로 현장 경력 8년이 지나면 명예롭게 일선에서 물러난다. 말하자면 정년퇴직을 맞이하는 셈이다.
은퇴견은 일반 가정에 분양하는데, 비록 무상이긴 하나 까다로운 심사를 거쳐야 한다. 한평생 사람을 위해 봉사했으니 평화로운 노년을 보장하는 차원에서다. 모집 신청자 가운데 함께 생활하기 적절한 환경을 충족한 대상을 가리고, 다시 예비 소유주 면접을 거쳐 통과하면 남은 기간을 가족으로 더불어 지낼 수 있다.

글. 오민영(소방안전플러스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