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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꽃보다 뜨거운 열정으로 화재에 맞서는
낭만주의자들의 한여름 무도회

프랑스 소방대

매년 7월 14일이면 프랑스는 혁명기념일인 바스티유 데이(Bastille Day)의 향연에 빠져든다. 이날 샹젤리제 거리에서 열리는 대규모 열병식에서 빠지지 않는 주인공이 있으니 바로 소방대다. 치안 못지않게 화재·재난 대응을 각별히 여기는 국민의 열렬한 환호 속에서 당당히 등장해 멋진 미소로 화답하는 소방관들은 곧 국가의 자부심이다.

100년 전통의 근위대 공병 출신 소방대와 의용 소방대의 독특한 컬래보레이션

군인이지만, 아니기도 하다. 과연 틀린 말은 아니다. 파리를 지키는 소방여단(Brigade des Sapeurs-Pompiers de Paris)과 마르세유의 해군 소방 대대(Bataillon de marins-pompiers de Marseille)는 분명 군 소속이다.

특히 파리소방여단은 이름에 유래가 남아있다. 1810년 오스트리아 대사관 화재로 유명 인사를 포함한 사상자가 다수 생기면서 나폴레옹 1세가 근위대 공병(Sapeur)에서 차출해 편성한 까닭이다. 공교롭게도 사치로 이름난 마리 앙투아네트 왕비의 출신이 오스트리아여서 프랑스 혁명 이후 시민의 반감으로 인해 관련 방화가 잦았는데 파리의 거리 폭이 좁아 금세 불이 옮겨붙었기에 급히 내린 대응책이라고. 당시 영향인지 합동 훈련을 받은 나라들은 프랑스 소방대가 여전히 군대식이라고 평가한단다.

반면, 그 외의 지역은 자원봉사의 개념으로 결성한 의용소방대가 담당한다. 비록 민간으로 구성하고 있지만, 조직 자체는 내무부 관할인 데다 선진 장비를 앞서 갖추고 있으니 우습게 봤다간 큰코다친다. 비중 역시 적지 않다. 총 25만 명의 소방관 가운데 정작 공무원은 약 5만 5,000명 정도에 불과하며 약 80%에 달하는 인원이 여기에 속한다.

흥미로운 건 연금, 처우 등에서 차이가 없고 오히려 수당은 비과세로 전액 지급하는 의용 소방관 대부분이 전문 소방관 합격을 희망한다는 사실이다. 본업 외 활동이 아니라 소방관으로 오롯이 일하고 싶다고 밝힐 만큼 명예와 자긍심이 대단하다.

심폐소생술로 친구를 구하는 어엿한 ‘작은 소방관’의 활약

프랑스 전역 1,600개 곳의 소방서에서 운영하는 JSP(Jeunes Sapeurs Pompiers)는 소방관에 대한 긍정적 인식을 엿볼 수 있는 일환이다. 직역하면 ‘작은(어린) 소방관’이라는 뜻을 가진 이 예비 소방관 프로그램엔 현장에서 활약하고픈 전국 2만 8,000명의 중·고등학생이 참여한다.

이는 매주 수요일, 학교에서 오전 수업을 마치고 오후부터 4시간씩 4년간 이뤄지며, 마지막 시험을 통과하면 이수증을 받는 동시에 소방관으로 인정받는다. 물론 바로 정식 소방 인력으로 투입할 수 있을 정도로 과정은 체계적이다.

이제 첫발을 뗀 JSP 1학년은 기초부터 차근차근 배운다. 전문 장비를 이해하고 국가와 시민의 권리·의무, 이웃과 조화롭게 사는 덕목 등을 깨우치느라 바쁘다. 중요한 실습은 2학년과 함께 듣는데 화재 종류에 따라 소화기를 달리 쓰고 직접 불을 꺼보는 방법 등을 배운다.

3·4학년부터는 동료와 한 조를 이뤄 훈련하며 체력을 기르는 데 집중한다. 소방 호스를 조립하고 써보고 인명을 구하는 연습은 실제와 다름없다. 그렇다 보니 지난 2017년엔 북부 옹플레르 지역의 JSP 4학년 학생이 체육 시간에 쓰러진 친구를 심폐소생술로 살려내 화제를 모았다.

일찍이 협동으로 다져진 아이들은 소방관에 대한 존경을 마음 깊이 새기며 자라난다. 그 덕분일까. 세계 25개국을 조사한 결과 프랑스는 소방관 신뢰도가 99%로, 부동의 1위를 차지했다.

소방대가 선사하는 유쾌한 댄스파티의 수익금은 근무환경 개선에 사용해

거리 곳곳에서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를 상징하는 삼색 깃발이 나부낀다. 바스티유 데이가 다가왔다는 의미다. 이 시기엔 파리 전역의 각 소방서가 특별한 이유로 분주해진다. 한여름의 무도회, 발 데 퐁피에르(Bal des Pompiers)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국경일 전날인 7월 13일부터 시작해 14일에 마무리하는 이 행사는 소방서마다 내 외부를 개조하고 샴페인, 맥주, 와인 등을 준비해 손님맞이에 나선다. 바텐더부터 댄스 파트너까지 척척 해내는 소방관들의 매력에 푹 빠진 여성들은 입구에서 이어진 긴 대기 줄도 마다치 않고 기다린다고.

들어갈 때 두세 군데의 보안 검색대를 거쳐야 하지만, 안전을 위해서니 불만을 토로하는 사람은 없다. 장소에 따라 입장료를 받는 곳이 있는가 하면 기부금을 요청하는 데도 있는데 어느 쪽이든 2~3 유로(한화 2,700~4,000원)의 저렴한 가격이다. 이로써 모인 수익금은 소방서 근무환경 개선에 사용한단다.

무도회라고 부르지만, 실상 가벼운 댄스파티인 축제 한 가운데서 음악에 맞춰 신나게 몸을 흔들다 보면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간다. 공휴일 당일은 금방 끊긴다는 파리 지하철을 놓치지 않으려면 적당히 즐기는 게 필수다. 이틀간의 행복한 일탈이 끝나면 소방대는 다시금 뜨거운 열정으로 아름다운 도시를 지키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파리 소방대가 선사하는 무도회, 발 데 퐁피에르가 더 궁금하다면?

글. 오민영(소방안전플러스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