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짙푸른 바다가 선사하는
상쾌한 바람을 따라서

우리 곁에 가장 가까운 동해안, 강원 속초

저 멀리 물살을 시원하게 가르는 하얀 선 하나가 어슴푸레하게 내려앉은 새벽의 고요를 깨운다. 밤새워 일한 오징어배가 속속 들어올 시간이다. 부지런히 시장을 가로지르는 발걸음 사이로 오징어, 대게 등 오늘 갓 잡아 신선한 내음을 물씬 풍기는 새물이 쏟아져 나온다. 속초에서 만나는 활기찬 하루의 시작이다.

도심의 더위를 벗어나 동해로…현지인도 사랑하는 대게 라면의 맛

한여름 불볕더위는 못내 지치는데, 에어컨 바람은 답답하다면 속초가 해답이다. 서울에서 가장 가까운 이 동해안 도시는 온도가 올라갈 틈이 없다. 설악산이 그늘을 만들고 상쾌한 해풍이 땀을 식혀주는 까닭이다. 실제로 초여름 한때 30℃를 웃돌았던 수도권 도심과 달리 18~19℃에 머무르는 시원한 환경으로 감탄을 자아낸 터다.

그러니 주저 없이 떠날 일이다.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즐거움인 먹을거리가 풍족하기로는 단연 손꼽히기에 걱정은 내려놔도 좋다. 다양한 메뉴에서 이것저것 고르기 복잡하다면 가장 좋은 선택지는 속초 중앙시장이다.

입구에서부터 눈길을 끄는 주인공은 쭉 뻗은 긴 다리가 매력적인 대게다. 보통 싱싱한 채로 팔지만, 찜통에서 막 쪄내 발갛게 익은 상태를 선호하는 이도 적지 않다. 어딜 가든 담백하고 쫄깃한 맛은 보장하지만, 가게에 따라 가격이 천차만별인 만큼 잘 보고 구매하는 게 관건이다. 여건이 허락한다면 식당에 가서 먹기보다는 직접 사서 라면과 함께 끓여 보는 건 어떨까. 어부들이 조업 후 허기를 달래기 위해 상품 가치 없는 걸 모아 만들어 먹으면서 입소문을 탄 대게 라면은 현지에서 인기 만점인 별미다.

매콤달콤 닭강정과 양념한 찹쌀로 속이 꽉 찬 오징어순대는 그야말로 스테디셀러다. 홍새우와 꽃새우 등 종류별로 선택할 수 있는 바삭한 새우튀김 앞에는 계속해서 줄이 이어진다. 여기에 떠오르는 신흥주자로 등장한 오징어 빵의 유명세가 더해져 시장은 매일같이 북새통이나 다름없다.

줄로 이어진 갯배 타고 다다른 곳에서 마주한 ‘아바이’에 대한 그리움

시장을 나와 골목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이곳에서만 있는 명물을 발견할 수 있다. 바로 갯배다. 1인당 500원이면 탈 수 있는데 저렴한 가격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이다. 바닷물이 들어오는 길이라서 건너가려면 배가 필요하긴 하나 거리가 꽤 짧다. 효율성으로 본다면 차라리 작은 다리를 놓는 게 나을 수 있었을 테지만, 오래전부터 양쪽에 줄을 잇고 배를 탄 사람이 잡아당겨 오간 방식이 명물로 자리 잡아 이제는 일부러 찾는 승객도 생겼다.

여기서 유머 포인트는 줄 당기기다. 앞서 이야기했듯 인력으로 갯배가 움직이는지라 보통 뱃사공이 끝이 구부러진 긴 쇠막대로 줄을 당긴다. 그런데 장정이 타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갑자기 쇠막대를 쥐여주는데 저도 모르게 이끌려 운전하다 보면 5분도 지나지 않아 반대편에 가 있는 거다. 사공의 재치에 누구나 무릎을 탁 치며 웃을 수밖에 없는 풍경이다.

갯배는 아바이 마을로 향한다. 지난 1951년 1·4후퇴로 잠시 남쪽으로 내려온 함경도 실향민이 휴전선이 생긴 후 올라가지 못해 집단 거주 마을을 이루고 살면서 동북 방언으로는 할아버지, 평안도 사투리로는 아버지를 의미하는 ‘아바이’라는 말이 붙었다. 그래서인지 마을에서 바다로 나가는 길에 조성한 조형물 가운데는 마치 먼 길 떠났다 돌아온 자식을 반기듯 지팡이를 짚고 나서는 할아버지 동상이 있다.

익히 알려졌듯이 여기서 아바이 순대가 유래했다. 찹쌀과 선지를 버무려 속을 넣은 함경도식 순대다. 대체로 오징어순대와 함께 즐기며 톡 쏘는 듯한 맛의 명태 식해가 곁들여 나온다. 또한, 드라마<가을동화>의 촬영지로도 이름나 있다. 주인공인 은서의 어린 시절 집과 극 마지막에 결국 눈을 감는 바닷가가 10분 거리를 두고 떨어져 있다. 그 근처에 소담스러운 조각공원과 벤치가 있으니 식사를 마치고 산책하기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한류 바람 타고 핫 플레이스로 급부상한 외옹치 해변의 특별한 매력

배우 송혜교를 통해 은서는 호텔 대표(?)가 되어서 돌아왔다. 재미있게도 같은 배우가 분한 드라마<남자친구>의 촬영지 역시 속초다. 아바이 마을이 서정적인 로맨스의 배경이었다면 외옹치항 인근의 L 리조트는 현대적인 감각의 건물과 정원 조성으로 요즘 세대의 사랑을 그리기에 안성맞춤이다.

한류 팬들이 자주 보이는데 드라마가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히트 친 영향이다. 특히 남녀주인공이 재회하는 신에 출현한 벤치는 사진을 찍기 위한 연인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비단 드라마의 흔적을 찾으러 온 건 아니더라도 이 핫 플레이스와 통하는 바닷길은 최고의 절경을 자랑하기에 한 번 들를 만하다.

외옹치 해변으로 걸어가다 보면 군데군데 철조망이 있는데 아무래도 북한이 가까운 탓이다. 1990년대에 실제로 무장공비가 침투한 장소였으며 동일한 이유로 군사 경계지역이었으나 최근 개방해 산책로로 쓰이고 있다고. 그러나 야간에는 어둡고 위험해서 출입을 제한하고 있다.

들여다보면 한없이 맑아 깊이를 알 수 없는 바다가 하얀 거품을 내며 고운 모래를 덮는다. 가볍게 걸어 외옹치 해변까지 나온 만큼 커피 한 잔의 여유는 필수다. 달콤 쌉싸래한 향을 맡으며 밀려오는 파도를 보고 있으면 더위는 어느새 저만치 달아나 있다.

글 · 사진 ∣ 오민영(소방안전플러스 편집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