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대메뉴로 바로가기 바닥글 바로가기

기획특집

재난사고 재조명


  • △ 그렌펠타워 아파트 화재

런던 서부 래티머 로드에 있는 24층의 120가구, 약 600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는 아파트, 그렌펠타워. 이곳에서 2017년 6월 14일 새벽 1시경에 큰불이 났다. 사상자 수는 무려 110여 명에 달했다. 처참한 화재로 무려 80명가량이 사망했고 약 400명의 실종자들이 발생했다. 너무나도 많은 부상자가 한꺼번에 발생한 탓에 인근 6개 병원으로 분산치료를 해야 했다. 시신을 수습하지 못한 사망자 또한 발생했을 가능성도 크다.

어디 그뿐인가. 현장에서 발생한 연기와 유독가스에 피해를 입은 인근 주민 수십 명 또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다. 그야말로 21세기 대표 선진국인 영국에서 발생한 최악의 화재사건이었다. 당시 화재원인으로 지목된 것은 냉장고 폭발, 스프링클러의 부재, 열악한 건물 내부구조 그리고 가연성 외장재 등 한 둘이 아니었다. 작은 실수와 방심의 불씨 하나하나가 모인 커다란 화재에 외국에서는 영국판 세월호 참사라고 칭할 정도였다. 그만큼 정치적, 사회적으로도 파급력이 컸던 화재사건이었다.

부경대학교 소방공학과 최준호 교수는 그렌펠타워 화재사건이 일어난 당시 국제화재안전과학회(IAFSS) 심포지움 참석 차 스웨덴 룬드(Lund)에 체류 중이었다. 현지와 가까운 곳에서 BBC 등 주요 보도를 통해 사고 당시 상황과 시나리오 파급을 직접 피부로 느끼고 이를 국내외 전문가들과 실시간으로 SNS를 통해 소통하였던 그는 누구보다도 그렌펠타워 화재사건에 대해 많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제부터 그와 나누었던 화재사건에 대한 심층 인터뷰를 공개하겠다.

그렌펠 아파트는 24층에 120가구가 거주하는 대형 아파트입니다. 이런 고층 건물에서 화재가 나면 취해야 할 올바른 대피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요?

일반적으로 건물 안에서 화재가 났을 시 취하는 행동요령은 소방청 홈페이지나 각 시도소방본부에서 배포하는 소방안전교육 홍보자료에 잘 나와 있어요. 모두들 어릴 적부터 교육을 받아 잘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본인이 화재 최초 발견자라면 먼저 119에 신고하고 화재경보기를 누르며, 연기가 가득한 장소에서는 낮은 자세로 통과하고, 불가피하게 그 구간을 통과할 때에는 젖은 수건이나 옷으로 얼굴을 감싸고 이동하는 등의 행동들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평소에 쉽게 간과하거나 건축물의 소방안전에 대한 지식이 모자라서 범하는 실수들도 많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방화구획 유지를 위해 자신이 통과한 출입문은 반드시 닫아야 한다던가, 대피를 할 때에는 반드시 피난계단을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죠.

화재 등 재난발생 시 피난은 원래 건축계획상에서 재실자가 건물 밖 지상층으로 완전히 탈출하는 것까지를 목표로 합니다만, 고층 건물 같은 경우에는 상황에 따라 옥상으로 대피하는 것이 더 안전한 상황도 있을 수 있습니다. 특히 계단실이 하나 밖에 없는 아파트나 주상복합건축물 같은 경우에는요. 또한, 불특정다수가 많이 모이는 멀티플렉스, 마트, 영화관과 같은 다중이용시설들은 복잡한 동선이 혼재해 있기 때문에 비상구를 찾아서 나가는 웨이 파인딩(Way-Finding)이 가장 제일 중요한 과정이에요.

  • △ 그렌펠타워 아파트 화재

반면에, 고층 건축물의 경우 수평적으로 넓은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피난계단만을 통해 수직적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따라서 피난구를 찾아가는 way-finding 과정이 상대적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지 않지요. 결국 고층 건축물의 피난동선은 수직적이므로 계단실을 찾은 후 그 계단을 따라 올라가느냐, 내려가느냐의 문제거든요. 그런데 연기는 또 부력으로 인해 아래에서 위로, 즉 저층부에서 상층부로 확산·이동해요. 이 때 피난하는 에이전트(사람)들이 계단을 이용하게 되면 이 연기층을 지나가야 한다는 거예요. 물론 아무리 피난계단실의 설계가 잘 되어 있더라도 방화구획이나 제연시스템의 기밀성 유지에 실패한다면 이런 화재 상황에서 무조건 그 연기를 뚫고 지나가야 하는 상황도 발생할 수 있습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각 거실 출입문(방화문)을 닫고 화재가 전소될 때까지 거실 내에서 대기해야 하는지 망설여질 수도 있습니다. 정말 케이스 바이 케이스인 거죠.

화재가 나게 되면 화재의 속성에 따라 대피하는 방식이 매번 바뀐다는 거네요?

예, 상황에 따라 달라져요. 우리나라 같은 경우 건축법에 초고층의 개념이 들어온 지 얼마되지 않습니다. 2009년 이후 최근에서야 초고층이 제도권에 들어오면서 피난안전구역이나 초고층특별법 등이 생겨나기 시작했어요. 특히 2000년대 이전에 지어진 아파트들은 계단실이 하나밖에 없는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한 대로 유일한 피난로인 이 계단이 화염이나 연기에 의해 오염되면 다른 피난경로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이 건물 안에 갇혀버리는 거예요. 잘 아시다시피 이럴 경우 유독가스 흡입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사망할 확률이 큽니다. 이럴 경우, 코와 입으로 호흡하기 전 유독가스를 제거하기 위해 물에 적신 손수건 등을 많이 사용하거나 물이 있는 수영장이나 목욕탕, 화장실 등을 임시대피소로 활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번 런던 아파트 화재 생존자 중 한 명은 자신의 방안을 물바다로 만들어서 극적으로 생존하였다하니까 이 경우는 입증된 것 같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구. 국민안전처 고시 2016-30호에 의거, 성능위주설계 시 바닥으로부터 1.8미터의 호흡선, 60℃ 이하의 복사열, 5m 이하의 허용가시거리한계, CO 독성기준치 1,400ppm 등 여러 상황별 수치를 인명안전성평가기준으로 삼고 있을 만큼 각 시나리오별로도 대피방법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렌펠타워 화재사건의 가장 치명적인 문제점이 무엇이었을까요?

그렌펠타워 화재는 어느 한 가지의 이유라기보다는 여러 문제점들이 복합적으로 연계되어 발생한 화재입니다. 그래서 더 치명적이었죠. 사실 하나하나 짚어보자면, 경제적인 이유로 싸구려 외장재를 사용했고 준공년도가 오래되어 스프링클러도 의무적으로 설치되어 있지 않았어요. 화재경보기도 작동하지 않았고 방화구획도 설정하지 않았고요. 거기에 거주민들이 화재에 대해 대처가 미숙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에 가장 큰 문제점을 꼽아보자면 바로 외장재입니다. 영국일간지 The SUN에서 사건의 흐름을 잘 정리를 해주었는데요.

먼저, 발화점에서 유리창을 통해 불이 번져 나왔고, 다음으로 외부피복의 알루미늄 부위가 떨어져서 가연성 부위가 노출되었다는 점, 이어서 노출된 폼이 연소속도를 가속화시켰다는 점, 이 때, 화염은 건물과 패널 사이 틈으로 들어가서 산소를 찾아 상층부로 쉽게 번지고 말았다는 점, 끝으로 화재가 성장하면 할수록 인접한 패널의 탈락을 가속화시켰고 이 화염은 결국 전체 외벽면으로 번졌다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이 발생하게 된 문제점을 총체적으로 살펴보면 그 주된 원인이 2015년 외벽 리모델링을 통한 외장재 교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 교체한 외장재로 ACM(advanced composite material)의 알루미늄 cladding(외부피복마감재)을 사용했습니다. 문제는 이 알루미늄 cladding 속에 가연성 폴리우레탄을 사용했다는 점이죠. 이런 가연성 폴리우레탄은 불에 노출되었을 때 쉽게 불이 붙기 때문에 연소 및 연소확대 속도를 높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최근 세계 최고층 빌딩 중 하나인 두바이의 ‘토치타워’에서도 화재가 났었죠. 화재원인 또한 그렌펠 아파트와 같은 ‘외장재’로 지목되었어요. 하지만 화재는 2시간여 만에 진압되었고 인명피해도 없었습니다. 그렌펠 아파트와는 대조적인데 그 이유가 뭘까요?

방화구획이 잘 설계되었는지 또 화재가 발생했을 때 그 방화구획이 제대로 유지되었는가가 차이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방화구획은 말그대로 불을 막기 위한 칸막이라 생각하시면 되는데요. 문이나 창문 등의 개구부나 설비관통부 등의 틈새를 제거하여 화염이나 열, 연기가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는 것을 말합니다. 방화셔터라고 들어보셨죠? 지하철역이나 백화점, 대형마트 등과 같은 대공간에서는 셔텨를 설치해놨거든요. 불이 나면 셔터가 내려와서 화재가 번지는 것을 막는 거죠. 두바이 뿐만 아니라 영국이나 우리나라에서도 최근에 지어진 건물들은 방화구획이나 소방시설을 잘 갖추고 있어요. 사회적 니즈에 의해 관련 법령이 점점 강화되고 있고 기술 또한 진보해오고 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런 것들이 얼마나 유지관리가 잘 되느냐에 대한 문제는 가장 중요한 사안임에도 불구하고 철저하게 소외되고 있습니다. 건축물 준공시점에서는 설계안대로 시공된 소방시설이 제대로 작동한다고 하더라도 10년, 20년이 지난 이후엔 그것을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소방시설은 화재가 발생할 때에만 작동하기 때문에 정말 평상시에도 철저한 유지관리와 점검이 필요하고요. 방화구획 또한 공간을 사용하면서 사용자들이 방화구획을 무너뜨리게 되면 설계안 자체가 무용지물이 되어버리니까요.

그렌펠 아파트는 24층에 120가구가 거주하는 대형 아파트입니다. 이런 고층 건물에서 화재가 나면 취해야 할 올바른 대피 방법이 무엇이 있을까요?

  • △ 최준호 교수 페이스북

일단 2가지 사고 모두 불이 났을 때 외장재를 타고 화재가 상층부로 확대된 것이 공통점입니다.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인명피해가 났느냐 안 났느냐지요. 부산의 해운대 우신골든스위트 고층아파트에서는 인명피해가 별로 없었어요. 화재가 성장하기 전에 모두 대피를 했기 때문이죠.

하지만 의정부 아파트형 도시형생활주택 화재사건의 경우 조금 다른데요. 드라이비트라는 외장재를 사용한 것도 큰 피해확대원인이지만 의무설치사항이 아니었던 스프링클러 부재에 의한 피해확대 또한 무시하지 못할 사안입니다. 미국화재예방협회(National Fire Protection Association, NFPA)에서 연구한 결과 스프링클러만 있더라도 피해의 70%는 줄일 수 있다고 해요. 잘 아시다시피 스프링클러는 초기 소화설비이지만 재실자의 인명이 달려있는 피난의 관점에서는 사실 화재성장이나 확산을 늦춰주는 역할, 그리고 화재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역할이 더 중요하거든요. 물론 초기에 화재를 제압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더욱 좋겠지만요.

이런 건물 화재에 대한 신기술이 있다면 하나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최근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서 개발한 새로운 피난기구가 공개되었는데요. 발코니 난간을 활용하여 아래층으로 연결되는 외부계단을 만들어주는 피난기구입니다. 이를 통해서 화재로 고립된 사람들이 이 계단을 통해서 새로운 경로로 아래층으로 대피할 수 있겠지요. 이 기술의 놀라운 점은 건축물의 입면을 미관적으로도 해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고정문까지 풀어서 별도의 독립된 피난사다리로도 만들 수 있다는 점이었어요. 요즘 대부분 건축물들은 미관을 위해 통유리를 설치합니다. 아파트도 발코니확장이 허용된 이후론 더더욱 커튼월구조로 입면을 디자인하기 때문에 leapfrog 현상 등 화재의 수직적 확산이 더욱 용이해지고 그만큼 피난에는 불리해진만큼 발코니확장의 효과를 소방안전의 관점에서 어느 정도 해결해줄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나라가 이번 그렌펠 아파트 화재사건으로 얻게 된 교훈이 있다면 무엇이라 생각하시나요?

아무래도 외장재 문제와 지자체 및 주민들의 대응방식이겠지요.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우리나라에서 우신골든스위트 화재, 의정부 아파트사고 등 외장재로 화재가 확산되어 많은 피해가 있었어요. 또한 최근 소방청의 전수조사에 의하면 전국 30층 이상 고층 건축물 중 135개 동이 이러한 가연성 외장재로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거든요. 우리나라에선 2010년 해운대 우신골든스위트 주상복합건물 화재로 2012년 3월에 고층 건축물에는 가연성 외장재를 쓰지 못하도록 하였고, 2015년에는 이를 6층 이상의 건물에도 적용했어요. 하지만 문제는 그 전에 지어진 건물들이겠죠. 그렌펠 아파트도 스프링클러에 대한 법이 개정되기 전에 지어진 건물이라 스프링클러 자체가 없었어요. 그런데 영국의 경우 우리나라와 다른 하나의 사건이 있었는데, 그렌펠타워 화재 이후 동일한 외장재가 사용된 모든 건축물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와 함께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을 3~4주간 건물에서 내보낸 다음 동일 외장재를 모두 제거해 이와 같은 비극이 반복적으로 일어나지 않도록 그 원인을 발본색원해버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매년 소방시설법령을 개정하고 있는데, 이는 모두 신축, 증축 등 새롭게 지어지는 건축물이나 사용공간에 대해서만 적용되다 보니 노후화된 건축물이나 소급적용되지 않는 과거에 지어진 해당 대상물들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가장 큰 관건입니다. 다음으로 방화구획을 잘 설정하고 시행한다면 화재 발생 시에도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화재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최고지만 화재가 발생한 후에 방화구획을 통해 화재가 확산되는 것을 막는다면 재실자들이 피난할 시간을 벌어주게 되거든요. 적어도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반복적으로 자주 발생하는 재래시장 화재 또한 철저한 방화구획이 뒤따른다면 화재가 발생하더라도 그 피해를 현저히 저감시킬 수 있습니다.

  • △ 실종자와 희생자를 위한 헌화

모든 재난사고, 사건들은 비극이다. 그렇기에 그 비극이 재현되는 것을 반드시 막아야 한다. 그렌펠타워 화재사고는 많은 이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됐다. 하지만 제2의 사고를 예방하는 밑거름이 될 수 있다. 우리가 화재를 잊지 않고 배우고 또 되새긴다면, 그리고 앞으로 생겨날지도 모르는 다른 희생을 막을 수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먼저 떠난 이들에 대한 진정한 추모가 아닐까?




인터뷰. 최준호 | 부경대학교 소방공학과 교수
글. 소방안전플러스 편집실



top